성당은 참담할수록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을 보여준다. 기도하는 인간, 겸손하게 몸을 숙이고 타인을 향해 팔을 벌리는 인간, 지고지순한 희망을 꿈꾸는 인간... 그리고 신을 향해 한걸음 다가가며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조각하고 가장 아름다운 빛을 드리우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웠던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은 건축기술도 부족하고 물자도 없던 시절,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장 한 장의 벽돌을 쌓고, 한 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기둥을 세우며 이루어낸 성당이다. 








1892년이 축성된 약현성당은 고딕양식을 닮은 듯하면서도 그보다 이른 시대의 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코스트 신부가 설계했는데, 당시 그는 용산신학교를 완공하고 명동성당 공사를 막 공사를 시작한 참이었다. 고딕양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장엄하게 지어진 명동성당과 비교하면, 약현성당은 규모도 작고 천장 구조도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공동체를 품어주는 넉넉함이 무척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정교하게 지어진 건물은 ‘최고(最古)’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건축학자들은 일본을 거치지 않고 서양으로부터 직접 수용된 초기 양식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한다. 




‘약현’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 언덕에 약초를 재배했기 때문에 붙여진 옛 지명인데, 질병을 치유해주는 약초밭에 성당이 지어졌다는 점이 무척 상징적이다. 이곳에 성당이 들어선 것은 조선시대의 사형집행장이자 천주교 박해 시기 수많은 순교자를 냈던 서소문 밖 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약현성당은 피 흘린 장소를 치유하는 의미와 함께, 종교의 신념으로 기꺼이 죽음을 맞았던 인간들의 넋을 감싸안는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약현성당은 다른 성당과 다른 절실함과 신실함이 있다.









120년을 견뎌온 오랜 성당이기에 여러 차례 보수 복원공사가 있었다. 원래는 마루가 깔리고 남녀 신도석을 구분하는 벽이 있었는데 1921년에는 그 벽을 없애고 벽돌기둥을 석조기둥으로 바꾸어 견고하게 했고, 1974년에는 해체대보수를 실시해서 외벽돌을 교체하고 창호, 지붕, 바닥을 완전히 바꾸었다. 


1998년에 화재가 발생해서 지붕과 건물 내외부가 크게 훼손되자, 2000년 이를 보수하면서 성당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원형복원 공사를 실시했다. 복원공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외벽의 벽돌이었다고 한다. 요즘 벽돌과는 색도 모양도 공법도 다른 당시의 벽돌을 재현하기 위해서 고령토를 섞어 가장 흡사한 색을 냈고 오래된 벽돌과 조화를 이루도록 표면을 거칠게 제작했다. 내벽도 붉은 벽돌의 침착하고 단단한 색감이 돋보이는데, 오랫동안 뒤덮인 흰색 시멘트 모르타르를 벗겨낸 결과다. 이렇게 해서 120년 된 벽돌과 새로운 벽돌이 공존하며 거대한 성당을 이루게 되었다. 



건물은 시간이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의 건물이 백년이 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겹겹이 드리운 손길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속적으로 보수하고 복구하며 건축물에 담긴 정신과 전통을 이어온 수많은 사연들이 겹쳐진 후에야 건물의 역사는 완전해진다. 영롱하게 어우러진 빛 그림 속에는 시대를 넘나들며 만들어진 다양한 유리 조각들이 섞여있고, 단단하고 고요한 벽돌 속에도 조화를 이루도록 세심하게 매만진 수많은 손길이 있다. 시대가 엮어주는 작은 조각들은 이 거대한 건축물을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의, 그리고 시대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유산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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