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류층이 살던 근대 한옥



집은 삶의 그릇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일상과 내면, 가치관까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고택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향기는 비밀스런 시대로 우리를 부른다. 근대건축유산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복잡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흔적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회동 93번지에는 ‘백인제 가옥’으로 불리는 고택이 있다. 백병원을 설립한 백인제 선생이 가족들과 1944년부터 살던 곳이다. 뛰어난 의사이자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그는 한국전쟁 때 납북되고 말았지만 전설처럼 뒤따르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이 집은 여러 소유주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백인제 선생 전에는 최선익이라는 청년갑부이자 민족사업가의 삶이 비밀스럽게 묻혀있고, 한성은행이 소유하고 있을 1930년에는 천도교에서 잠시 사용하면서 스며든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을 지은 실업가 한상룡이 있다. 


한성은행장을 지낸 친일실업가 한상룡(1880~1949). 총리대신 이완용의 친인척이며 대한제국왕실 총친의 조카였던 그는 어려서 일본유학을 다녀온 일본통이었다. 일본 경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추앙하고 이토 히로부미와도 친분이 깊었던 그는 한편, 허례허식이 없으며 정치적 노림수보다는 실업가로서의 철학을 지켰던 인물이라고 전해진다. 회갑을 맞아 성대한 연회를 거행하는 대신 인생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을 집필한 것도 이 인물의 독특한 이력이다. 


1906년 가회동으로 이사온 한상룡은 주변의 집 열 두 채를 매입해서 900평에 이르는 넓은 땅을 보유하게 되었다. 1913년부터 살림집으로 쓰는 안채와 연회와 사교를 위한 사랑채, 하인들이 사는 문간채, 처가 식구를 위한 별채, 테라스가 있는 일본식 주택 등 100여 평에 이르는 집을 지었다. 이 집은 조선 최고 실업가로서 일본인 관료를 비롯, 정제계 유력자들과 회합하는 사교의 장이자 연회공간이었다. 살림집인 안채는 중문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고 외부에서는 감쪽같이 숨겨져 있다. 고위층 인사들이 자동차를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대문 앞에 넓은 공간을 만들고 정원에도 공을 들였다. 


특히 총독을 비롯, 일본인 관료들이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발휘했다. 일본주거에서 자주 사용되는 흑송을 사랑채에 사용한 것, 전통식 우물마루가 아닌 일본식 장마루를 깐 중복도와 다다미가 깔린 이층방을 설치한 것 등은 한상룡의 전략이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은행 상황이 악화되자 한상룡은 부채 5만원을 스스로 감당하며 한성은행 측에 이 집을 넘겼다. 이 집은 그는 인근 178번지로 거처를 옮겨 자신의 입지에 걸맞는 또 다른 대저택을 세웠으니 가회동에는 한상룡이 소유했던 두 채의 대저택이 있는 셈이다. 


이 집은 서양식, 일본식 건축언어가 접목되어 있지만, 전통한옥의 우아함과 아름다움도 충분히 담고 있다. 공들여 지은 집답게 반드시 살펴봐야할 부분들도 많다. 우선, 분합문(들어 올려 걸어둘 수 있는 장지문)을 설치한 사랑방이 딸린 사랑대청은 이 집의 가장 멋진 장소다. 유리문으로 두른 사랑대청은 서양식 가구가 놓여 근대기의 멋이 살아있다. 안채 마당으로 향한 사랑채 화방벽은 길상문자와 전통 무늬로 고즈넉한 안채에 우아한 멋을 수놓는다. 이 집의 가장 높은 지대인 북쪽 언덕에 세워진 누각은 집주인이 홀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유리문으로 두른 누마루에 앉으면 북촌 일대가 두루 펼쳐져 그 풍경이 한편의 드라마가 된다. 


이 대저택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다소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친일파 실업가의 집을 문화재로 보호하는 일, 잘 지어진 집이라고 감탄하는 일에 감정적인 혼란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이 건축물이 문화유산으로 보호되어야하나,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등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건축물들을 ‘부정적인 문화유산(Negative Heritage)’라고 부른다. 당시 삶을 조명하는 자료로서, 후대에 교훈이 되도록 남기고 그 의미를 계속 새롭게 읽어내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대의 복잡성, 삶의 복잡성이 끼어든다. 아프고 고된 근대사를 경험한 우리에게 부정적인 문화유산은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역사의 거울이다. 


한상룡의 집은 민족실업가인 최선익이 소유하면서 한상룡이 전략적으로 세운 일본식 가옥을 철거하고 집의 규모를 줄인 역사가 있고, 백인제라는 근대사의 주요한 인물이 살면서 민족의 비극을 읽을 수 있는 역사가옥으로 의미가 더해진다. 문화유산은 오직 단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백여 년의 세월 동안 거쳐간 인물들이 시대가 켜켜이 담겨있는 것이다. 한상룡의 집이자 최선익, 그리고 백인제의 집인 이 역사가옥을 중요하게 살펴야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글 사진 최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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