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었다고 말하기에도, 아직 청춘이라고 하기에도 뭣하지만, 나 역시 옛날 좋았던 걸 종종 떠올리게 되는 요즘이다. 추억을 팔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았던 것을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나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80년대 사춘기를 보내고 90년대 청춘들 틈에서 살았다.  그때 내가 주말을 보내던 곳은, 서면과 광안리, 부산대학교 앞. 이런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었던가 보다. 나는 동네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거리, 장소... 그런 것들을 리스트업해두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쇼핑의 중심가는 서면이었는데, 태화쇼핑, 동보서적, 서면 뒷골목 떡볶이거리, 미니몰같은 여자애들의 놀이터, '스크린' 등등의 영화잡지와 '르네상스'같은 만화 잡지를 살 수 있는 헌책방과 대한극장이 있었다. 

부산대학교 앞은 지금도 시끌시끌한 쇼핑 플레이스가 아닌가 싶은데, 학교 다니면서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던 기억과 그 길고긴 대학시절 동안 공부를 대충대충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어둑한 분위기에 근사한 음악이 흘러나오던 카페 H.R은 내가 좋아했던 곳. 

그리고 그때는 해운대가 아니라 광안리로 몰렸다. 세련된 젊음의 거리였다. 근사한 로바다야끼나 해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비치 비키니' 같은 남국의 장식이 있는 통유리 카페가 등장했고, 뒷골목에는 규모가 작고 예쁜 아파트들이 있었다. 그 길을 걷다보면 고급스런 주단가게, 가구가게, 자동차 숍 등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친구와 바다와 가장 가깝다고 자랑하던 맥도날드에서 초코 선데이를 먹으면서 바다를 보는 게 제일 좋았다. 



그런 장소들이 좋았다. 걸으며 보던 풍경,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몇 번이고 같은 길을 걷던 그 날들이 좋았다.  



신기하게도 그런 기억들은, 장소와 더불어 오랫동안 각인된다. 안타깝게도 내가 언급한 장소들 중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세월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모조리 갈아치웠다. 도시란 참으로 비정하지 않은가!그러니, 자조적으로 말하자면, 새로 짓는 건물들은, 도시에서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할 것이다. 인간처럼 건물도 언제 사라져버릴 지 모르니까. 







그런 도시에서, '부산데파트'가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부산데파트는 아주 오래전부터 봐왔던 건물이다. 중앙동에서 남포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주로 보게 되는 건물인데, 로터리 앞에서 우회전할때, 오른쪽 편에 보이던 거대한 건물이다. 건물 표면에 부산데파트라는 글자가 써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데파트라는 말도 낯설고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의 자태도 꽤 위압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훨씬 더 거대한 건물이 부산 곳곳에 들어섰지만, (해운대의 수많은 초고층 건축물의 금빛 찬란한 모습을 떠올려보라.) 부산 데파트라는 구조물은 여전히 꽤 거대한 건물 축에 속하리라. 

부산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건물의 위치를 정확히 알만큼 대표성을 가진 건물이긴 하지만, 정확히 이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들어가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존재하지만 생활 속에 들어온 적 없는 건물이랄까. 




아랫쪽은 상가, 위쪽에 아파트가 있는 주상복합의 형태라고 했다. 건물의 연대도 한세대를 넘어섰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그 집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보았다. 


 



정식 명칭은 '부산멘션빌딩'이다. 주소지는 중구 동광동 1가 1번지다. 1번지는 언제나 상징성이 있는 건물이 세워지기 마련이다. 부산 데파트를 두고, 부산의 최초의 주상복합 쇼핑센터라고 한다. '데파트'라는 명칭은 '디파트먼트 스토어'에서 파생된 일본식 명칭이다. 원래 동광동 공설시장이 있었는데, 이를 통합정비하여 쇼핑센터를 짓기로 하고 1968년 5월 25일 공사를 시작했다. 사업을 주도한 곳은 상공회의소였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거대한 쇼핑센터를 운영할 여력이 있는 민간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69년 11월 15일에는 상가부분이 완성되어 부산데파트를 개장했고, 1971년에는 상층부의 주거부분까지 공사를 완료했다. 부지만 해도 910평, 지하 4층에서 지상 4층까지 상가와 사무실로, 그 위의 3개층은 아파트로 만들어졌다. 아파트는 중정을 두고 세면으로 둘러진 형태다.  




<공사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은 찾을 수 있었지만 건물의 설계자나 도면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아쉽다. 천천히 찾아서 보충하고자 한다.>




동광동 공설시장을 통합하여 고층 상가를 짓는 공사가 시작된다. 직각삼각형 모양의 대지에 딱 맞게 건물이 올라간다.  





동광동 1가 1번지의 맞은편에는 옛 부산시청이 있었다. 시청은 연제구로 옮겨갔고, 

그 자리에는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섰다. 지하 4층까지 파내려가는 공사가 시작된 현장.



(좌) 완성된 모습의 부산 데파트. 지상 7층 중 상부 3층은 아파트를 포함하고 있다. 

(우) 중앙동을 대표하는 도로주변에 당당하게 들어선 부산데파트 





이른바 광복동과 남포동을 이르는 광포동 쇼핑센터의 중심이 되기에 이 건물이 다소 초입에 위치한 까닭인지, 너른 상권에 회전이 빠르고 저렴한 물건들을 쏟아내는 국제시장이나 서면 상권에 밀린 까닭인지, 부산 데파트는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장소로만 알려졌다. 

지금도 상점의 물품 품목은, 인삼이나 전통 민예품과 같은 관광 기념품이 주를 이루고, 지하 식당가도 내부 상인을 위한 장소로만 보였다. 변화가 빠른 상권을 장악하기에 거대한 몸집 만큼이나 민첩하지 못하고, 몇 년 전에는 바로 맞은편에 롯데백화점까지 들어와버렸다. 



그렇다면 아파트는 어떤 모습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 상가 안팎을 헤매다, 결국 바깥으로 나와서 한바퀴 돌고 나서야 엘리베이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니, 그늘진 어둠 바깥으로 환한 햇살이 비친다. 소음하나 없이 조용한 아파트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오래된 집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삼각형 모양의 중정은 빨래도 널고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는 장소인 것 같지만, 실제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알 수가 없다. 


중정에서는 도시의 소음을 잊은 듯, 세월도 잊은 듯,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건물에 요즘 타지 사람들이 많이들 온다고 한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촬영 이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단다. 그날도 내가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니, 어디 찾냐고 물어보던 상인들이 "서울사람들인가배."하면서 신경을 거두고 자신들의 일로 되돌아갔다. 아파트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수줍게 길을 알려주던 입주자도 있었고 집 자랑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건물이 단단하단다. 못을 박는 것도 힘들 정도로 건물이 단단하단다. 


"돌과 시멘트를 좋은 걸로 써서 그렇지." 


바깥의 소란함이 차단된 아늑한 중심. 그곳에서 조용히 담담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면 아파트 전체를 통과하여 조망할 수 있다. 집집마다 이어진 파이프들이 마치 건물의 혈관처럼 보인다. 그 길 끝에는 누구나 앉아 쉬어갈 수 있는 낡은 의자가 있다. 시골마을이나 소도시, 혹은 오래된 골목이면 흔히 집 밖에 의자 하나쯤 내어놓고 서로간에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바깥 구경을 하기도 한다. 바깥에 내어놓은 낡은 의자는 그런 정겨움의 상징물이다. 



맞은 편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너르게 볼 수 있었을 텐데. 바다 건너편 섬에서 밤이면 불이 켜지는 풍경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영도대교가 개통되던 날, 다리를 위를 빼곡히 채웠던 사람들 무리, 맞은 편에 있던 유서깊은 부산시청이 내부로 옮겨가고 남아있던 건물이 허물어지는 것도 이 자리에서는 또렷하게 보였을 것이다. 






해안은 지금도 흙으로 메워지고,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롯데백화점 뒤켠에는 롯데가 수십년에 걸쳐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을 지어올리느라 여전히 공사중이다. 부산이 개항했을 때는 지금 이곳조차도 바닷물이 찰방이는 곳이었다. 부산 시청을 마주보며 변화의 중심에 있던 건물은, 한세대에 걸친 개발의 역사 이후, 퇴락한 채, 새로운 개발의 현장의 목격자로 자리바꿈하였다. 



동광동 1가 1번지는 아마 앞으로도 상징적인 지점으로서 남아있을 것이다. 

시대의 목격자로, 도시의 목격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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