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벽화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어, 

내가 본 최고의 벽화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벽화의 도시하면 프랑스 리옹을 뺴놓을 수 없다. 




리옹에서 2년 반의 시간을 보냈는데, 알면 알수록 매력있는 도시였다. 손강과 론 강 두개가 흐르는 반도 형의 지형을 가진 리옹은 강을 넘을 수록 시대가 과거로 흐른다. 론강을 경계로 현대와 산업시대가 나뉘고, 손강 넘어로는 바로크와 르네상스, 고대시대의 건축물들이 켜켜이 자리잡아 역사의 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세시대부터 비단산업과 은행업, 포도주 산업, 출판 산업 등으로 프랑스 중심도시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기차의 도착>을 찍고 상영한 뤼미에르 형제,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베리, 내로라하는 셰프인 폴 보퀴즈와 같은 문화 인물, 올림픽 리요네와 같은 스포츠 스타들도 리옹을 본거지로 한다. 12월 8일마다 열리는 빛축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아름다운 축제이며, 리옹 아트 비엔날레, 보졸레 누보 행사 등도 거르지 않고 열린다. 렌조 피아노가 지은 현대미술관과 장 누벨이 지은 오페라 등 현대의 것들이 옛것 가운데 스며들어 빛나고 있기도 하다. 


도시를 구성하는 산업과 문화의 씨줄과 날줄이 참으로 촘촘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벽화는 리옹의 현재를 알리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리옹은 벽화의 도시라고 할만큼 도시 곳곳에 거대한 그림들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의 빈 벽에 그려진 벽화들은 리옹에서 펼쳐진 다양한 역사적 이슈들과 리옹이 배출한 다채로운 인물들이 그려진다. 이 정도면 딱히 별다를 것 없다 여겨질 수 있지만, 리옹의 벽화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건축물과 건물이 자리잡은 도시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접근했기 떄문이다. 그 중에도 그림인지 실제인지 착시효과를 주는 '트롱프-뢰유(trompe-l'eoil)'로 그려진 벽화들이 흥미롭다.  물론, 벽화를 찾아 리옹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지역은 우리나라와 달리 건물과 건물 사이를 떼지않고 벽을 연결하여 짓다. 그러므로 건물의 옆면은 건물이 들어설 것을 예상하고 장식이나 창 없이 밋밋하게 마무리한다. 때론 표면이 건물이 뚝 잘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그 옆에 오랫동안 건물이 지어지지 않으면 밋밋한 표면이 그대로 돌출되어 흉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벽이 그림의 캔버스가 된다. 



천만다행으로 지자체의 캐릭터나 기업의 광고판, 혹은 캐치프레이즈 같은 것은 절대 넣지 않는다. 후원하는 업체가 있다해도 두드러지지 않도록 브랜드명을 재치있게 삽입하여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건축의 고유한 양식을 잘 반영하여 건물의 연속처럼 보이게 하는 한편, 유머와 위트를 가미하여 벽화를 완성한다. 






오래된 건축물이 많은 구도심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신도시에 새워진 콘크리트 아파트의 벽면에도 벽화를 위한 좋은 캔버스가 된다. 리옹 전역에는 이렇게 그려진 벽화가 수십 종이 있는데 이 작업을 맡아 하는 전문가 그룹이 있으니 바로 '시테 크레아씨옹(cite creation)'이다. 

프랑스 리옹에는 이들이 그린 가장 큰 벽화가 있는데, 크루아 후스(Croix-Rousse)지역의 1200 m2의 벽면에 그려졌다. 중세부터 실크산업으로 유명했던 크루아 후스 지역을 상징하는 다양한 스토리를 담은 이 벽화는 1987년에 처음 그려진 후 여러 차례 새로 그려졌는데, 올 4월에 세번째  작품이 등장했다.  






2013년 4월에 공개된 크루아 후스의 벽화. 착시 효과를 두어 건물과 계단이 겹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화다.  



거대한 만큼 정교한 작업이다. 새로운 벽화에는 비보잉하는 스트리트 댄서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부부, 담쟁이 덩굴 등 활력있는 현재의 모습이 담겼다. 

 




내가 리옹에 있을 때 본 그림은 이랬다. 원래는 빈벽이었는데, 건물 앞으로 도로가 생겨나면서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흉하게 남은 빈벽에 거대한 벽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이면서 그들의 인터뷰한 내용을 보고서 이들이 생겨난 배경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미술계에는 보자르(beaux-arts)라고 하여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1970년대 미술계는 대부분이 추상과 미니멀리즘으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미술 현상에 지루함을 느낀 몇 명이 모여 재미있고 실제 생활 속으로 침투할 수 있는 예술을 꿈꾸며 벽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옹의 벽화에서 중요한 점은 도시와 공존하는예술에 대한 고민들이다. 그저 하나의 장식이 아니라, 도시인에게 잔잔한 즐거움을 주며, 생동감있게 하면서도 도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건축과 도시의 프레임 안에서 조화롭게 이루어내고 있다. 리옹의 벽화와 우리 벽화마을과는 태생이 다르며 실행주체도 다르지만, 공간에 그림을 그려서 도시의 형태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같다. 도시의 역사, 도시의 건축, 도시의 구조와 결합된 예술적인 그림을 우리 벽화마을에서도 보게 되기를 바란다.  






리옹의 대표적인 벽화 몇 점을 소개한다.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문화도시로서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주제를 표현한다. 

중요한 점은 건축적인 요소와 연결하여 건물의 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 

건축과 조형, 예술과 아이디어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하기에 가능하다. 



책의 도시, 영화의 도시, 미식의 도시, 축구의 도시, 은행과 비단 산업의 도시임을 부각할 뿐만 아니라, 

생텍쥐베리, 토니 가르니에를 비롯, 생존인물들까지 리옹을 빛낸 스타들을 벽에 담는다. 






1. 리옹은 책의 도시이자 영화의 도시다. 중세 시대부터 책을 출판했던 리옹의 이력은 특별하다. 당시는 대학도시들만이 출판업이 융성했는데, 리옹은 상업도시로서 책의 거래뿐만 아니라 책의 출판까지도 진행했던 도시다.  


2. 시네마토그라피의 창시자인 뤼미에르 형제도 리옹에서 연구와 활동을 펼쳤다. 세계영화사에 기록된 첫 실사영화인 <기차의 탄생>이 바로 리옹에서 촬영된 것이다. 리옹은 이것을 기념하여 리옹종합대학에 뤼미에르라는 이름을 붙였고,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벽화로 남겼다.   







리옹 사람들의 벽화(fresque des Lyonnais) 손(Saone)강변에 있는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 속에는 리옹이 배출한 유명인물들이 가득하다. 중세시대 성녀, 수도자, 철학자 등을 비롯해서, 사교계의 꽃이라 불렸던 레카미에 부인, 생텍쥐베리와 어린왕자도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시대가 점점 지금과 가까워진다. 



가장 아랫층에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들로 채워져있다. 올림픽 리요네라는 축구클럽은 프랑스 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는 등, 리옹을 축구의 도시로 알렸고, 최고의 셰프로 불리는 폴 보퀴즈는 리옹을 미식의 도시로 만들었다. 




벽화와 실제가 구분되지 않는다. 벽화는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침투하여 도시를 좀더 활력있고 예술적으로 만들다. 








신도시의 공공 아파트 벽면도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19세기~20세기를 살았던 건축가 토니 가르니에를 기념하는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있는 이곳은

토니가르니에 도시 박물관(le musee urban Tony Garnier).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 그 시절의 건축물, 도시 풍경, 다양한 조형적인 이미지들이 벽을 채우고 있다.

모두 25개의 벽화가 그려져있다. 




가장 좌측의 이미지는 토니 가르니에가 설계한 대규모 가축시장이며 이 장소는 지금도 문화재로 남아서,

대형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든 사진은 cite de la creation(www.cite-creation.fr)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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