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 탄광 지역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 될 수 있을까?





올해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관광객이 엄청나게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지난 여름에 양동마을에 잠시 다녀왔는데, 이런 곳이 여태 남아있었나 싶을 정도로 색다르고 흥미로운 전통마을이었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 새롭게 정비하는 등 많은 노력이 바탕이 되었지요. 창덕궁, 종묘, 수원화성, 조선왕릉, 경주 역사지구 등 우리 역사를 면면히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들이 이미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아래의 열 가지 기준에 대해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으로 규정된 내용인데요.

<문화유산 해당항목>

첫째,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둘째,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셋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넷째,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다섯째,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 혹은 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

여섯째,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자연유산 해당항목>
일곱째,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

여덟째, 생명의 기록이나, 지형 발전상의 지질학적 주요 진행과정, 지형학이나 자연지리학적 측면의 중요 특징을 포함해 지구 역사상 주요단계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

아홉째, 육상, 민물, 해안 및 해양 생태계와 동·식물 군락의 진화 및 발전에 있어 생태학적, 생물학적 주요 진행 과정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일 것

열째, 과학이나 보존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를 포괄할 것.


참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 (한국의 유네스코 유산) 홈페이지 http://www.unesco.or.kr/heritage/



종묘의 경우, 세번째 항목에 해당하는 유적이고, 석굴암과 불국사는 첫번째 항목과 네번째 항목을 만족시키는 유적입니다. 유적의 특성에 따라 폐사지처럼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폐허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 수가 있는데, 이렇듯, 각기 유산들의 근거를 찾아내어 문화유산의 가치를 분명하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경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죠.

양동마을과 하회마을도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문화유산 외에도 기록유산, 자연유산 등의 파트가 있습니다.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 세계 기록유산으로 선정되어 있고,  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지요.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지역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새로운 관점에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면밀하게 보호,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해인사의 장경각. 천년을 바라보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을 보전하는 국제 전문가 NGO이자 유네스코의 주요 자문위원인 이코모스(ICOMOS)에서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 위원회도 마땅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역사, 전통문화, 고고학, 지질학 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 학자들이 이 연구회의 주요 인원입니다.


세계 문화 유산 잠정 목록의 발굴을 위한 포럼 현장




이코모스 코리아에서 <한국의 세계 유산 잠정 목록의 발굴>이라는 포럼이 열려서 지난 9월 8일에 다녀왔습니다.

과연 어떤 지역의 어떤 문화재가 그 물망에 올라와 있는지 궁금했기도 하거니와 이번 포럼에서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 하여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는 지 궁금했습니다.


잠정목록이란 "앞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될 만하다고 판단되는 유산"인 것이죠.


현재, 공주 부여의 백제역사지구, 남한산성, 낙안읍성과 외암 마을 등이 문화유산으로, 우포습지와 서해안의 갯벌 등이 자연유산으로 잠정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언제든지 삭제와 첨삭이 가능하여 좀더 합리적으로 문화유산에 접근할 다른 기준이 마련된다면 언제든지 삭제와 추가가 가능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개별 건축물이나 기념물이기보다는 자연과 역사, 문화가 유기적이고 다층적으로 연결된 복합유산이나 근현대사를 반영하는 문화유산에 집중되는 추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 땅,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이 필수불가결하게 되었습니다. 논의에서는 조선시대 9개 서원울릉도, DMZ와 같은 장소들이 추가로 잠정목록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그렇다면 근대문화유산 중에서는 어떤 분야의 건축물 혹은 지역이 잠정목록에 포함될 수 있을까요?


첫째, 전쟁 유적지입니다. 군사유산이라고도 하는데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땅에 남게된 수많은 전쟁의 흔적들입니다. 때론 버젓한 온전한 건물로 남아있기도 하고, 때로는 폐허로 남아 아스라한 기억과 상처를 안겨주는 곳이지요. 

일제강점기의 군사유산은 제주도에 남아있는 태평양 전쟁 관련 유적이 대표적입니다. 제가 소개한 적 있는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유적을 비롯해서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오름 내부에 있는 수많은 지하벙커 등이 남아있습니다.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섬 제주의 심장에 자리잡은 전쟁의 흔적이 장소의 아이러니를 보여주지요.

 

알뜨르 비행장의 비행기 격납고

모슬포 해안쪽에 있는 어뢰정 보관 동굴




그 외에도 진해 해군 기지 내부에 있는 방비대와 요항부 사령부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유럽풍의 건축물이며 군사지인 까닭에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지요. 물론, 군사기지인 까닭에 일반인은 절대 출입할 수 없는 장소라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좋을 지 확신할 수 없는 곳입니다. 가덕도 등대 역시 부산, 진해와 긴밀한 군사지로 엮어있으며, 가덕도에 남아있는 일본군 포대와 막사들도 당시를 증언하는 장소입니다. 

가덕도 남단에서 남해안을 바라보고 서있는 가덕도 등대




한국전쟁 유적지로는 격전의 현장을 보여주는 철원 노동당사, 포천시에 있는 벙커 전적지, 민통선 내부에 있는 죽음의 다리 등이 있습니다. 민통선 내부에 있어 과거의 피폐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파주 구 장단면사무소, 철원 제일교회, 인민군 막사 등이 이에 포함될 것이며, 노근리 학살 현장인 쌍굴다리도 주요한 흔적이 될 것입니다. 


피난민의 생사를 갈랐던 노근리 쌍굴다리

미군의 양민학살을 증언하는 장소죠.







두번째는 산업유산입니다. 산업유산은 근대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던 공장, 창고 등을 통칭하는데, 건축재료나 형태는 단순하지만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또 산업유산의 매력이지요. 옛날 공장이 예술가의 창작센터로 활용되거나 창고가 문화센터가 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변화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 번 소개한 바 있는 인천아트플랫폼도 인천 해안가의 창고들이 멋지게 거듭한 형태이고, 담배공장과 그 부속시설들도 대구, 청주, 제천 등지에 남아있어 그 변화가 주목됩니다. 

 

대한통운 창고가 문화공간으로-인천 아트 플랫폼

 

 

청주 연초제조창과 부속 창고들도 좋은 쓰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구 연초제조창의 거대한 모습.


제천의 엽연초 수납 취급소도 복원을 끝냈습니다.

목재 트러스가 쫙 펼쳐진 내부.




또다른 산업유산으로 들여다 보아야 할 곳이 태백의 철암역두선탄시설이라 불리는 탄광시설물입니다. 지금도 가동되는 이 낡은 탄광 시설물은 그 형태과 규모가 압도적일 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우리 근현대사의 면면이나 산업의 역사 등 배우고 알아야 할 역사가 숱하게 흩뿌려져 있는 장소입니다. 


 

 

태백 탄광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이곳은 20여개 건물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탄광이 더 이상 가동되지 않는 날이 오면 탄광 박물관으로 사용되면 좋을 것입니다.




세번째는 근대교회유산입니다. 우리나라는 카톨릭이건, 개신교건, 성공회건 다른 나라와 달리 독창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졌고, 이들 종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건축형태와 예배형태가 나타났습니다. 한옥성당, 한옥교회가 대표적이지요. 또한 조선후기에는 천주교를 억압하여 수많은 순교자를 낳았기에 지금 이들 박해지들이 성지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한글로 정리한 성경과 송가집, 각종 문헌들도 많이 남아있고 연구가 활발한 분야입니다. 


 

 

강화도 성공회성당. 마치 사찰처럼 보이는 한옥성당입니다.

찬송가, 기도서 등 많은 자료들이 남아있고 연구도 활발하지요.






이코모스에서 제안하는 근대문화유산은 이 정도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지켜보면서 아직은 근대문화유산의 잠정목록은 조금 요원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 유적이야 각 종교단체에서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쟁유적과 산업유적의 경우, 국민적인 관심이 얼마나 될까요? 

또한 이들 유적지와 문화재를 되살리는데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을까요? 제대로 복원하고 있는지, 복원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진정성있게 진행되는지 살펴본다면 부끄럽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근대문화유산.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왜 남겨야 하는지 판단기준도 없을 뿐더러, 그 판단에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허물어지고 사라져가는 것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우리 역사의 오점 또한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문화재 관련 단체에서 우리에게 어떤 해답도 주지 않습니다. 소통이 없습니다. 잠정 목록으로 등록하기에 앞서 이들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고 많이 보러가게 하고 교육하는 일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문화유산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문화재 분야에서도 이제 좀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교육에 앞장서 주시면 좋겠습니다. 콘텐츠만 교육하는 게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태도도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고 유홍준 선생이 말씀하셨지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했습니다. 알고 사랑하게 되면 이 땅에 남아있는 것들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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