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부인과는 한국현대건축계의 투톱 중 하나인 김중업의 작품입니다. 건축가들은 건축물을 곧잘 작품이라고 부르니까 놀라지 마시길.





오늘은 일본인 오오세 루미꼬 상과 함께 한 서울답사 이야기를 들려드릴까합니다. 루미꼬 상과의 인연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제가 쓴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를 흥미롭게 읽었다며 연락을 해온 일본인 여자. 메일로 연락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당황했었어요. 독자분들 중에 일본인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그것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건물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당시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생각해보자면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반목될 만한 구석이 많으니까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물결 속에서 혼란을 겪던 시기, 건축물도 그런 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런 점이 식민지였던 우리에게는 치욕과 분노, 제국주의 입장이었던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혼란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많지요.


우리가 근대문화유산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도 역사라는 점입니다. 한줄기 툭하고 잘라내서 다른 뿌리에 이식하면 꽃이 피는 접붙이기는 역사에서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치욕과 분노,라는 감정을 한꺼풀 걷어내고 당시 우리나라의 풍경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어쨋건, 세상은 돌아가고 새로운 문물은 밀려들어오고, 사람들은 더불어 살아가던 시기이니까요. 백년 전 이 땅에는 21세기인 지금 못지 않게 수많은 국적의 외국인들이(일본인뿐만 아니라) 정복욕과 종교적 헌신과 일확천금의 기회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었습니다.



루미꼬 상은 아시아 지역의 근대건축물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1920년부터 1950년까지의 소화시기의 건축물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일본은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시스템, 문화유산정책 등이 우리나라에 비해 잘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시기의 건축물들이 많이 헐려나가고 있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과 함께 소셜네트워크 카페를 만들어 아시아 곳곳의 근대문화유산,특히 일본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을 찾아보는 중이랍니다. 그 대상들은 어찌보면 제국주의의 색채가 담겨있을 수밖에 없는 건물들이지만 일본인으로서 그런 건물들을 찾아보는 것도 또한 역사의 단면단면을 알아가고 복원해가는 방법이겠지요.



다행히 루미꼬 상이 한국어에 능해서 일본어라고는 '오겡끼데스까'와 '스고이'밖에 모르는 저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활동을 과연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상하이, 베트남, 요코하마, 나가사키 등지를 돌아봐야겠다고 결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단지 그 시기의 건물, 그 시기의 문화를 좋아하고 또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관점을 벗어놓고 옛 건물을 찾아다니며 '스고이'를 외칠수있는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한번 만나기로 했습니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원래 3월에 도쿄에서 만날 것을 계획했으나 일본 동부 지진으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고 몇 달 후 6월에 그녀가 서울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만나고보니 루미꼬 님은 한국인 남편 사이에 두 아들을 둔 제 또래의 여성이었습니다. 처음 보자마자 저와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신하게 인사를 나누고 곧장 서울 답사를 떠났습니다. 짧은 일정에 아이 둘을 둔 주부인 그녀, 겨우 하루를 혼자 여행할 시간이 났다며 그 시간을 서울 근대 건축 답사에 투자하다니, 참으로 그 열정이 놀랍습니다. 




 

1시- 대학로 어느 까페에서 루미꼬 상과 만나다. 루미꼬 상은 오전에 청계천문화관에서 <경성 1930> 전시를 보고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를 다녀온 후였다. 냉면을 먹기로 하고 택시로 을지로 4가 우래옥으로 향했다. 냉면 가격이 1만 2천원. 작년에 비해 3천원이나 뛰어서 깜짝 놀랐다. 점심을 하면서 간단히 자기소개 및 관심분야를 공유했다. 아이폰을 대학로 카페에 두고 온 것을 기억해낸 루미꼬 상, 다시 대학로로 갔다.

2시-답사 시작. 혜화에서 지하철로 이동.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3번 출구로 빠져나오니 바로 앞에 서산부인과가 나타났다.







서산부인과 


오늘 답사하게 될 장소들은 루미꼬 상이 정했습니다. 그녀는 2003년에 서울에서 3년간 살면서 후암동, 삼각지, 충정로 등지의 옛 건물과 거리들을 답사한 후 서울을 소개하는 웹사이트에 취재내용을 게재하기도 했답니다.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만난 오래된 건물. 건물에 새겨진 마름모꼴의 장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무늬는 일본 소화시대 집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식인데, 그것을 서울의 낯선 거리의 건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니. 그런 작은 계기가 서울의 오래된 거리를 거닐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산부인과는 김중업이라는 걸출한 건축가의 작품입니다. 김중업은 세계건축계의 거장으로 알려진 르 꼬르뷔제의 건축연구소에서 건축 실무를 닦았으며, 아시아 끝의 작은 나라에 르 꼬르뷔제의 건축 언어를 이식했던 중요한 인물입니다. 제 모교인 부산대 인문관, 건국대 도서관, 프랑스대사관 등을 설계했지요. 둥글둥글한 유기적인 형태의 흰색 콘크리트 건물은 당시 지어지던 다른 건물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이 건물의 평면도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이쿠야. 완전 남성의 생식기 모양이더군요. 그것도 생생하게. 김중업 선생 알고 보니 유머가 대단하신 분인것 같아요. 건축가인 남편 얘기로는 자궁의 모양을 형상화한 건물이라고 '책'에서 배웠답니다. 어쨋건 19금 급 건물은 병원과 살림집이 함께 있는 파격적인 형태를 가졌는데, 이후 여러 상업시설들이 들어오면서 산부인과로서 기능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간판을 모두 떼고 내부도 깨끗하게 리노베이션 중이었는데, 과연 어떤 건물로 사용될지 궁금했습니다.



 


 

2시 40분-  도보로 장충단길 공동주택으로 이동. 가는 길에 한국건축계의 투톱의 다른 인물 김수근의 경동교회를 지나갔다. 교회 옥상이 멋지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장충단길 공동주택

장충단길 공동주택은 지번으로 찾는다면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건물이 한자리에 빽빽하게 들어차있었습니다. 다행히 미리 찾아둔 자료사진으로 건물 확인 작업을 거쳤기에 찾아낼 수 있었지요. 근대문화유산이라고 보기에 공동주택은 살아오면서 많은 첨삭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집이 갖고 있는 고유의 뼈대는 옛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거주자들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 조심스럽게 몇 컷을 담아보았습니다.

장충동은 지금도 근대 시기에 지어진 가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이 장소가 가진 역사성도 풍부하지만 광복과 전쟁 후 재건시대라 불리던 대한민국 산업화시기에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라고 합니다. 공동주택은 1955년 경 무허가로 지어졌다가 1968년에 사용승인이 난 건물로서 50여년 동안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하네요.





3시 30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5호선 전철로 이동-> 충정로역 9번 출구 충정아파트 도착. 루미꼬 상은 예전에 이 일대를 답사하면서도 이 건물의 존재를 몰랐다며 새삼 흥분했다. 우리는 다 낡은 아파트를 두고 신기한듯 사진을 찍었다.








촬영 중인 루미꼬 상. 사진이 마음에 드는지?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는 어김없이 화분이 가득!





충정아파트(유림아파트, 토요타아파트)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라고 알려진 충정아파트는 자그마치 1935년대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4층 짜리 집합주거가 처음 세워졌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당시는 문화주택 열풍이 불어서 샐러리맨들이라면 너도나도 집 한채 가져보는 꿈을 꾸던 시기였지만 세로로 높이 쌓인 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었을까요?

당시 서울에는 일본회사의 간부들을 위한 관사가 다수 지어졌는데, 이들 관사가 후에 아파트라는 고층 집합 주거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미쿠니 아파트가 등장한 후에 관사가 아닌 임대주거의 형태로 유림아파트가 지어졌다고 합니다. 도요타라는 건축가가 지었다고 해서 도요타 아파트라 불리기도 했던 모양인데, 현재는 충정아파트라는 이름입니다. 주로 일본인들이 임대해서 살았고, 개인생활이 가능하며 최신 설비를 갖췄다고 해서 젊은 중산층에서 선호했다고 하는군요.

충정아파트는 세 동의 건물이 중정을 둘러싸고 모여있는 듯한 형태이며 중앙에는 급수탑이 높게 세워져있습니다. 지금은 세월을 실감할 만큼 노후되었지만 사람들이 사는 곳답게 어느 곳이나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는 화분이 가득했습니다. 한국전쟁 후에 1층을 올려 지금은 5층 아파트인데, 불법으로 올린 5층때문에 지금도 거주자들의 갈등이 있는 모양입니다. 




 

4시 택시로 이동. 송월동 서울기상 관측소. 정문에서 올라가는 길이 거의 등산 수준이었다. 루미꼬 상은 이 건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서울 기상 관측소(구 경성측후소)

경성측후소라 불렸던 서울기상관측소. 기상청 관련 시설은 보라매공원으로 이전했지만, 그래도 서울 기상 관측소는 서울날씨의 기준이 되는 장소입니다. 관측소 앞 잔디밭에 심어진 진달래꽃이 피어야 서울에서 진달래가 피었다 하고 이곳에서 눈이 포착되어야 서울에 눈이 온다고 공식 발표한다는 말이죠. 우리나라에 근대적 기상업무가 시작된 것은 1904년부터입니다. 기상업무는 주변 여러 나라와 기상 정보를 공유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세계와 소통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즉, 세계와 같은 기준의 시간대로 움직인다는 의미지요. 초창기 기상청에서 정오를 알리는 오포를 쏘고 오보라는 사이렌을 울렸던 것을 보면 기상업무는 근대적 시간 관념과 무척 연관이 깊습니다.


경성측후소는 1907년 업무를 시작했으며 건물은 1933년에 이 장소로 축후소가 옮겨지면서 신축되었습니다. 콘크리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벽돌건물입니다. 건물을 둘러보니 흰색 도료가 떨어져 나가 내부 구조물이 드러난 부분이 있었는데, 검은색 벽돌이었어요. 벽돌은 붉은 색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벽돌 사이즈가 요즘 것보다 크고 독특해보였습니다. 근대시기에는 벽돌 건물이 무척 많이 생겨났는데, 벽돌의 사이즈나 종류가 무척 다양합니다. 벽돌 생산의 역사를 살펴보면 건축물의 연대와 스토리가 다채롭게 드러나지 않을까요?





5시- 도보로 정동길을 걸었다. 개화기 공관이 밀집해있던 정동길은 지금도 걷기 좋고 분위기 좋은 거리다. 러시아공사관 터에 남은 탑신을 살펴보았다. 정동극장 뒷편 중명전은 폐관시간이어서 외관만 구경했고, 덕수궁이 8시까지 개관이어서 덕수궁 내부로 들어가 정관헌을 살펴보았다.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자리에는 탑신만 남아있습니다. 아관파천의 현장인 러시아공관은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었지요.



지난 해 개관한 중명전도 구경했습니다.





정동 산책- 러시아 공사관, 중명전, 덕수궁 내 정관헌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했는데 이동시간이 짧아서인지 정동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동은 대한제국기의 서방의 공사관들이 밀집해있던 장소입니다. 아관파천으로 잘알려진 러시아 공사관 터. 한국전쟁으로 건물은 파괴되었지만 탑신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공사관터는 파고라가 놓여진 공원으로 변신했더군요. 거닐기에 좋았습니다. 신아신문사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명패가 붙어있었습니다. 이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예사롭지 않아 보였는데 지금이라도 건물의 가치를 알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중명전과 정관헌도 둘러보았습니다. 루미꼬 상은 정관헌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우리는 정관헌 옆쪽 한적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종이 커피를 무척 즐겼다는 사실, 손탁 호텔을 운영하던 손탁 여사가 커피 시중을 들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역관 김홍륙이 고종이 마실 커피에 아편을 타서 독살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 등을 풀어놓았습니다. 요즘에도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며 명사를 초청, 이야기를 들어보는 행사가 가끔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지요.  시민들에게 공개된 공원같은 서울의 궁궐이 무척 인상적이었던가 봅니다. 도쿄는 궁궐 건물이 일년에 한번 정도 개방된다고 해요.




6시 30분 택시로 효자동으로 이동. 보안여관을 살펴보았다. 오늘 답사는 여기까지. 길모퉁이에 있는 음식맛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반죽을 직접해서 파스타를 만드는 멋진 장소였다. 파스타가 맛나서 디저트까지 먹을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이야기도 꽤나 길어졌다.






통의동 보안여관


보안여관은 루미꼬상과 함께 둘러보고 싶어서 제가 추천한 장소입니다. 1920년대 여관 건물로 쓰였던 2층짜리 주택인데, 중앙에 복도가 있고 양쪽에 방이 놓여있지요. 통의동 보안여관은 지금은 여관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답사일에 전시가 끝나 작품 철거 작업이 진행중이어서 내부를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통의동, 효자동 라인에 기묘한 옛 집이 무척 많고 카페나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어서 둘러보면 좋을 만한 장소이지요. 이 지역과 더불어 건너편 통인동, 청운동 등의 지역을 경복궁 서편에 있다 하여 서촌이라고 부르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서촌 지역의 근대문화재들을 한번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하루 답사로 서울을 모두 구경하기는 어렵지만 궁궐에서 관공서 건물, 집합주거, 현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런 장소들을 함께 걷고 건물 속에서 감회를 나누었지만, 그 길에서 우리가 정작 나눈 이야기들은 우리 자신의 꿈,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는 기혼여성으로서의 삶(약간 고달픈)이었던 것 같습니다.

건축물은 삶과 떼어놓을 수 없듯, 우리가 지금 탐하고 찾아다니는 옛 건물들도 현재 우리 삶과 결부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지요. 우리는 이들 옛 건물을 보면서 우리 삶을 보고 현재의 시간 속에서 옛 이야기를 찾아봅니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것은, 시간을 초월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찾아가보려면>>

서산부인과
서울시 중구 신당1동 13번지

장충단길 공동주택
서울시 중구 장충동1가 47번지 외

충정아파트
위치-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3가 250번지

서울 기상 관측소
위치- 서울시 종로구 송월동 1번지 / 문의- 02-736-1919

러시아 공사관
위치-서울시 중구 정동 15-1번지
사적 253호

중명전-정관헌
위치- 서울시 중구 정동 1-11번지 덕수궁
사적 제 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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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장림종, 박진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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