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비주얼 어쿠스틱스>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건축사협회에서 주최한 제2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다. <비주얼 어쿠스틱스>는 그 개막작으로 선택된 작품이다. 건축영화제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건축물이나 건축가를 주제로 하지만 건물 하나하나, 건축가 한 명 한 명을 스터디하듯이 보여주는 영화는 없었다. 건물을 매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 건물이 있기에 존재하는 수많은 풍경들을 가감 없이 담으면서 그 속에서 건물의 역할, 건축가의 역할을 더듬어보는 작품들이 리스트에 가득했다.


예를 들면
, 난해한 현대예술품처럼 생긴 건물을 배경으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스포츠맨이나, 혹은 벽에 창문을 내겠다며 소음을 일으켜 나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 이웃의 이야기처럼. 건축이 중심이 아니라 그 매개가 되는 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고 보면 건축적 상황이란 반드시 건축가와 건축주의 문제는 아니며, 언제 어디에서나 흔히 발생하는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건축이란, 우리 삶의 배경이 되는 그런 곳이니까.


 

<비주얼 어쿠스틱스(2008)>는 건축물을 찍어온 미국의 사진작가 쥴리어스 슐만(Julius Shulman(1910~2009))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낯설기 짝이 없지만,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적인 건물인 낙수장과 구겐하임 뮤지엄이 찍힌 사진은 건축을 배운 사람이거나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세계 여러 곳의 건축물을 직접 보는 일이란 쉽지 않기에 우리 중 대부분은 건물을 사진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하기에 건축 사진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줄리어스 슐만은
1930년대부터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모더니즘 건축가의 작품을 뷰파인더에 담았다. 리처드 노이트라의 카우프만 하우스, 루돌프 쉰들러의 쉰들러 하우스,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 홀 등 그의 작업실을 빼곡히 채운, 감히 세어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필름들은 그의 삶 그 자체다.







Julius Shulman, John Lautner, Malin Residence
캘리포니아의 지대를 내려다보는 이 독특한 주택은 말 그대로 상상력이 넘친다.
영화촬영지로 자주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인데, 실내 홀은 기하학과 입체감으로
심오한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슐만의 사진은 건물만을 오브제로 담지 않고 건물과 외부 환경,
생활하는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건축이 문화의 한부분,
자연의 한부분으로 어떻게 링크되어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점은 건축이 왜 필요한가, 건축적 환경이 우리 생활에 왜 중요한가,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캘리포니아의 척박한 땅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건축물이 있다면
,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가 있다면,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더없이 근사하게 해주면서 상상력이 풍부한 집이 있다면 슐만은 달려가서 사진을 찍었다.


슐만의 사진은 건물만을 돋보이게 찍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 위태로운 지형이건 풍요로운 자연이건 그 지역의 풍토 속에 잘 어울려 있는 건물을 좋아했고, 건물과 자연이 어울려 더 넓은 컨텍스트에서 바라보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집 속에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흔적을 녹여 넣었다. 건축물은 자연 속에 있고, 건축 속에는 사람이 있다. 그 단순한 해답이 그의 사진 속에 있는 것이다. 그곳의 자연은 거칠 것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웠으며 그곳의 사람들은 여유롭고 아름다웠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문화는 충실해보였다. 자연과 사람의 매개체는 바로 건축이었다.


 

에릭 브리커 감독의 2008년작 다큐멘터리 <비주얼 어쿠스틱스> 속에서 슐만은 거대한 몸집의 92세의 할아버지였다. 이 할아버지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영화는 슐만의 모습, 정확히 말하면 건축에 대한 슐만의 태도를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슐만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타셴 출판사에서 작품집이 출간되었고 대학에서 명예건축학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최대 아트센터 중의 하나인 게티 센터에서 슐만의 필름을 관리하게 되면서 그의 사진이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발판도 마련되었다.

 


카우프만 데저트 하우스가 완공되었을 떄의 사진.
슐만이 찍은 사진은 수십년 후 원형을 잃은
건물을 새롭게 복원하는 데 사용되었다.
건물이 사라지기 직전 이 건물을 구입한 집주인은
슐만에게 연락을 취했고, 수많은 사진 덕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사례가 생겨날 수 없을까?






우리는 왜 줄리어스 슐만을 알아야만 하는 것일까
?


건축을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슐만 할아버지의 탁월한 능력 때문도 아니고
,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들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소개해온 업적 때문도 아니다.

 

슐만의 미덕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땅과 땅 위의 건축물에 대한 애정이다. 슐만 할아버지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막마저 파헤쳐지는 상황을 질타하며 줄곳 자연을 보호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또 자연과 교류하고 융합하던 건축물들이 좋아서 건축가를 쫒으며 험한 곳이라도 사진을 찍어온 근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 둘씩 사라진 건축을 사진으로라도 되살려볼 수 있도록 7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도시의 풍경과 건축과 사람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자신만의 뚜렷한 시각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진은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자료로서 그 지역 건축의 역사를 보여주는, 나아가 미국 건축의 한 시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사진은 사라진 건물을 복원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사라지기 직전 카우프만 데저트 하우스를 사들인 집주인과의 인터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1947년에 완공된 카우프만 데저트 하우스는 '리처드 노이트라'라는 건축가의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수십 년 동안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 여기저기 덧붙여지고 부분부분 사라져 반쪽 짜리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건물을 헐고 그 땅 위에 새 집을 지으라는 부동산업자의 권유로 집을 구경하던 어느 부부는 이 건물이 한 때 걸작으로 불리던 건물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헐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 원래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이 집을 사들였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걸작이라 불리던 카우프만 데저트 하우스는 이렇게 살아남게 되었다.
 집주인은 슐만에게 연락을 취했고 슐만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건물의 곳곳이 찍힌 수십 장의 사진을 갖고서 말이다. 사진으로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다. 건물의 형태뿐만 아니라 건물이 지향하던 분위기, 공간의 아름다움까지 재탄생하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사진은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신념이 담긴 사진이라면 더더욱. 사진이 있다면 건물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복원하는 일이 가능하며 이미 오래 전에 바뀐 도시의 풍경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시간의 먼지가 쌓여 묵은 광이 나는 근사한 풍경이 되었겠지만 아쉽더라도 새롭게 되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으로 복원하는 것에도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오류를 넘어서는 분명한 정보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에서 덕수궁 중명전의 복원이 시작되었고 단 한장이기 때문에 더 이상 완벽한 복원이 불가능했듯이.


 

   

끝까지 건축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남은 줄리어스 슐만



슐만 할아버지는 말한다
.
복잡하고 귀찮은 일은 건축가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사진을 찍자. 모더니즘 건축은 지금보다 기술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었지만 기술의 끝까지 밀어 부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건축물에 상상력을 부여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건축가에게도 이런 말을 한다. 너무 대단한 것을 만들려고 하지 말게. 그것은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야.

 


슐만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보면서 나는 과거 건축가들의 고뇌와 드라마틱한 건축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건축 상황과 우리의 건축 '자료' 상황도 대입해보았고, 바스라지고 사라져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은 우리 근대건축의 현장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진 작가가 없음을 안타까워하지 말자
.
남아있는 것들이라도 찾아 다니고 끝까지 파헤쳐보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주변에 많이 있으니까. 오래된 것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블로거들이 조금씩 발걸음을 넓히고 있으니까. 바스라진 건축의 현장에서 온갖 상념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어떻게 되살려볼까 스스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근대건축물을 이해하고 보존하는 일은 문화재청만 하는 일도 아니고 건축협회나 시 공무원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일은 그들의 몫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도와 법의 틈새에서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이다.

나는 우리 것을 아끼고 오래된 것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 작지만 단단한 그들의 걸음을 믿는다. 그들의 뷰파인더에 잡힌 것들이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리라는 것도 믿는다. 그것이 내가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서 이 오래된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이다.

슐만은 2009년 7월 15일에 98세로 타계했다. 슐만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계속 하라고. 대단한 일을 하려 할지 말고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는 거야.!"





 
Julius Shulman, Stahl Residence ,1960

담소를 나누는 여인들이 우아한 분위기를 한껏 불러일으키는 사진.
바깥에 펼쳐진 로스 앤젤레스의 풍경과 어울려 풍요로운 한 때를 절묘하게 연출한다.
슐만은 우연하게 이 장면을 포착했다.
셔터를 누르는 슐만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까지 들릴 듯한 생생한 사진이다.


 
젊은 시절의 슐만의 모습. 위와 같은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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