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이 사는 곳, 

공소로 떠나다








<운월리공소>







<비봉공소>



<여사울공소>







<신리성지>








홍성에 사는 현옥 선생님과 공소여행을 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현옥 선생님은 주말을 공소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에 할애하고 있다. 순례자처럼 흙냄새도 맡고 야생화도 보며 공소까지 걷는다. 사람의 걸음으로 공소와 공소를 연결하는 건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이번 여행은 여러 공소를 방문하려다보니 아쉽게도 자동차다. 그래도 공소 가는 길엔 소박한 시골길이 우릴 반겼다. 사람 사는 오종종한 풍경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공소는 사제(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신도들끼리 모여 성찬예절을 올리는 작은 천주교회다. 마을마다 자생적으로 생겨나 운영되다가 신도들이 많아지면 본당으로 격상되기도 한다. 공소 내부는 제단과 회중석이 있는 강당과 부속실로 구성된다. 십자가와 종탑은 있지만 성체를 봉헌하는 감실은 없다. 교회처럼 크고 버젓한 공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고 소박하다. 


현옥 선생님은 충청지역을 천주교가 전래되고 교세가 형성되는데 큰 역할을 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박해 시기 천주교인들의 처형지와 신부들의 순교지 등 천주교 성지도 많으며, 예부터 형성된 신앙공동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번 여행엔 한옥으로 지은 양촌 공소, 시골 살림집을 개조한 비봉공소, 작은 교회를 닮은 운월리 공소와 여사울 공소를 만났다. 그 사이에 갈매못 성지와 신리 성지도 돌아보았다. 


농가가 늘어선 마을의 높은 데 자리 잡은 운월리공소로 가는 길엔 채송화밭과 꽃대가 쑥 자란 보랏빛 꽃밭이 우리를 반겼다. 빨간 십자가를 인 높은 첨탑 대신, 나뭇가지를 두 개 겹친 소박한 십자가가 조촐하게 걸린 공소는 작은 마을회관처럼 보였다. 회중석과 제단, 그리고 성화와 성모상을 보게 되니 이곳이 교회가 맞구나 싶었다. 어스름 속에 사물들이 눈에 익자 살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동안 보아온 교회의 꾸밈새와는 많이 달랐다. 


제단은 오래된 장식장이 대신하고 있었고 팔걸이의자에 핑크색 쿠션이 놓여있었다. 화가가 그린 정밀한 성화가 아니라 빛바랜 낡은 모사본 성화가, 묵직한 조각상이 아니라 날아갈 듯 가벼운 재질의 성모상이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신도들이 사용하던 것들을 한 가지씩 가져다놓은 것 같았다. 현옥 선생님은 회중석 의자들조차도 근처 성당에서 쓰고 남은 것들을 가져와서 쓰는 게 공소의 운명이라며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이 참 좋았다. 이 따뜻한 경건함이란! 삶에 정성을 다하는 태도에서 풍기는 경건함이었다. 어릴 적 살던 집을 떠올리게 하는 창문틀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드는 빛은 프랑수아 밀레의 ‘저녁기도’를 떠오르게 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기도하는 부부의 등을 쓰다듬어주던 그 빛줄기 같았다. 


역사성을 가진 공소들은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한다. 진안 어은공소, 신성공소, 상홍리공소 등연대가 높고 독특한 양식의 한옥공소들이 이에 해당한다. 한옥 공소인 양촌 공소는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보수복원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현옥 선생님은 아담하고 친근했던 느낌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 건물로 바뀌어버린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점은 근대건축물의 보수복원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수많은 공소들이 마을 속에 조용히 남아 있다가 천천히 사라질 것이다. 지금껏 남아있는 공소들은 주로 농어촌 산간 지역 등지에 몰려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이다 보니 공소를 찾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공소로 바뀐 곳도 있다. 그러다 매각되어 다른 용도로 쓰기도 하지만, 버려져 폐가가 되기도 한다. 마을의 중심에서 함께 호흡해온 중요한 장소라 하더라도 공동체가 사라지면 유지될 수가 없다. 사라지는 것도 건물의 운명일까?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채 먼지로 되돌아가는 것.  


여사울 공소는 새로 조성된 여사울 성지에 모든 역할을 넘겨주고 문을 닫은 지 한참이었다. 1958년에 지어진 여사울 공소는 문화재가 되기엔 건축적 가치가 충분치 않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우리의 정신에 대해 말하는 곳이었다. 먼지 쌓인 창문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한 시절이 떠올랐다. 하얀 미사포를 쓰고 기도문을 읊는 여인들이 언뜻 보이는 것 같다. 그 시절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시간은 반듯한 건물을 점점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어정거리며 건물의 곁을 지켰다. 해가 넘어가고도 새파란 하늘이 한참 떠있었다. 첨탑 아래 십자가는 여전히 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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