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술품 복원전문가인 김겸 선생(김겸복원연구소)을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관심있는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강연을 청해들었습니다. 그동안 해온 예술품 복원 사례들과 복원이라는 작업의 의미들을 천천히 이야기해주시던 말미에,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이한열 선생의 운동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미술관에 놓이는 예술작품들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사례는 익히 들어왔지만, 운동화라니.. 다소 의아했지만 박물관의 유품들처럼 필요하다면 복원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운동화 복원 프로젝트를 계기로 그 이름, 이한열을 다시 듣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때 초등학생이었기에 직접 겪은 일도 상세히 알고 있는 일도 없습니다. 한참 나중에 아주 먼 지점에서 87년의 일들을 흘러가는 옛 노래마냥 듣고서 멀게 또 멀게만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원가는 다른 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역사의 현장에 그대로 있는 듯한 격한 감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복원가가 하는 일은, 시간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흘러가버린 과거의 것들을 생생한 현재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나도 작가로서 과거의 사건을 꺼내서 지금과 맞닿는 지점을 찾고 다시 들여다보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글은 현재가 되지 못하며 항상 방향성을 지닙니다. 사물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그 자체입니다. 문자와 다른 의미에서 파워풀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유산을 만나러 박물관에도 가고 미술관에도 가게 됩니다. 과거를 보는 이유는, 현재와 미래를 더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작가로서 나역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과거의 아름다운 것들을 꺼내어 들춥니다. 모든 것은 지금 우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복원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복원은 시간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복원은 어느 정도까지, 어느 지점의 모습으로 복원하는가가 무척 중요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고정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유물이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후대의 어느 시점에서 그때 필요한 복원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란 유구한 시간 속에서 고작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까지 있을 뿐이다,라는 것을 누구보다 명명백백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들이 복원가인 것입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시간을 거스를수 없으며 시간 그 자체가 유물에도,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신촌 이한열 기념관에서 6월 11일에 이한열 선생의 운동화 복원 과정을 공개하는 세미나와 전시가 있었습니다. 삼화고무의 타이거운동화는 오른쪽 한쪽만 남아있습니다. 그마저도 2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레탄고무가 삭아서 바스라지고 있었습니다. 국내에 신발을 복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지 수소문끝에 예술복원가 김겸 선생에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손이 닿기만 해도 폴리프로필렌우레탄 밑창이 가루가 되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우선 에폭시계 접착 물질을 넣어 우레탄을 굳히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점점 형태가 어그러지는 운동화를 펼치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 다음 운동화의 상태가 어떠한지 뒤집고 안을 들여다보며 차근차근 짚어갑니다. 


운동화 바닥은 패턴이 있습니다. 다행히 바닥패턴의 앞부분은 남아있습니다. 우레탄 덩어리를 맞춰서 조금씩 조금씩 바닥의 부스러진 부분을 추려가는 동안, 바닥의 패턴을 찾아보는 일을 병행합니다. 삼화고무는 이미 오래전에 도산했기에 제조사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어려웠고, 운동화 컬렉터들에게도 수소문해보았으나 같은 모델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바닥 패턴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하나씩 맞춰졌습니다. 자잘한 조각을 하루에 한조각도 제대로 못맞추고 시간을 보낸지 오래.. 바닥 조각의 주요한 지점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패턴이 위와 90도 정도 틀어진 형태였음을 알게 됩니다. 













유물을 설명하는 기록지를 오랫동안 읽습니다. 내용물의 외형을 설명해주는 기록지입니다. 나는 이 기록지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습니다. 말해지는 것은 언제나 말해지지 않는 것보다 적습니다. 말해진 것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너는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고 나는 물어봅니다. 



이한열 기념관 3층에는 당시의 사진과 선생이 당일 입었던 옷과 안경, 그리고 운동화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 그곳에 있습니다. 매캐한 최루탄이 퍼지고, 최루탄 통이 하늘을 날고, 그리고 머리에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대학생과 그를 안고 있는 학우. 어째서 이 사회는 그런 장면을 만들어냈을까요? 그리고, 이 장면이 다시 없으리라는 보장을 우리는 할 수 있을까요? 



그날의 뜨거웠던 함성들은 결국 대통령 직선제라는 거대한 성과를 일궈냅니다. 하지만, 직선제로 당선된 대통령은 저 사진 속의 학우들이 그렇게도 몰아내고 싶었던 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지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있어났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왜 여태, 저 말도 안되는 사건이 이토록 무수히 일어나고 있을까요? 과연 이 사회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28년이 지났습니다. 행사장에는 이한열 선생의 어머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날의 풍경이 우리에게는 되새겨야 하는 과거의 유물들인데 그 어머님께는 28년간 쭉 현실이었음을 알게됩니다. 우리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과거가 될 수 없는 일.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2015년 6월 10일이 끝끝내 해결되지 못하고 28년이 지난 후에도 가슴에 피멍이 든 현실이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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