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군산해관. 군산을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입니다.


 

1920년대의 군산 내항과 그 주변 풍경. 빼곡히 들어찬 가옥과 건물들이 지금보다 더 활기차보입니다.





근대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우리나라 곳곳의 크고 작은 도시들
, 소읍을 찾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한번도 발걸음 하지 않았던 도시들도 찾아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 도시만의 독특한 풍경을 발견하고 감탄한 적도 많았습니다. 군산도 그런 곳이었습니다.

 

군산은 볼거리가 참 많은 곳입니다. 사대천왕이 있다 할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맛있는 짬뽕집이 많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 있다고도 합니다. 설경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거대한 호수도 있고요. 그리고 구도심의 오래된 가옥들을 어슬렁거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소위 일제시대의 가옥들이 즐비한 신흥동, 월명동의 거리는 말 그대로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풍기죠. 목조가옥, 독특한 지붕과 창문, 한옥도 양옥도 아닌 건물이 주는 독특한 느낌들. 아스라한 옛 풍경처럼 향수 어린 느낌과 알 수 없는 이질감이 한데 섞여 여행 온 자들의 마음에 야릇한 바람을 불어넣는 그런 곳입니다.


짬뽕도 유명하지만 일해옥 콩나물 국밥도 군산별미라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단팥빵, 야채빵이 끝내줍니다.



 

작정하고 군산을 방문한 것은 2009년 1월 1 아침이었습니다. 그날도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도시는 외지인에게 무심한 찬바람을 뿜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고요했고 우리는 그 고요함을 뚫고 옛 항구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갈 것도 없이 도로를 따라 쭉 들어오다 보면 느낌으로 알게 됩니다. 이곳이 그곳이구나. 그 때 찬 눈발 사이에 반듯하게 서있는 붉은 벽돌 건물들이 얼마나 무심하게 반짝이던지.

 


옛 군산해관은 흰 눈 속에서 진홍빛 존재감을 드러내며 기묘한 아름다움을 풍겼고 허물어질 듯 서있는 옛 조선은행은 그 규모만으로도 어찌나 육중한 지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죠
. 드문드문 서 있는 오래된 건물 뒤로는 바닷물이 미동도 없이 스며들었습니다. 파도도 없이 고요한 바다는 마치 호수 같았지요. 이곳을 내항이라고 부릅니다. 항구의 기능은 모두 신항만에 내어준 채 오래된 건물들과 함께 고요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듯했어요.


 

2011 1 1에도 우리 부부는 군산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해맞이 지역과 리조트를 피해 한적한 곳을 찾다 보니 또 군산입니다. 며칠간 내린 눈이 얼음이 되어버린 군산을 거닐었습니다.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어느새 눅눅해진 운동화를 끌고서 군산의 내항을 자박자박 걸어보았습니다. "이런 날 누가 군산 내항에 구경을 오겠어?" 라고 자문하면서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카메라 들고 내항을 기웃거리는 청년들이 몇몇 보이더군요. 대단들하십니다.

 


군산 내항 부잔교. 모두 네 개가 설치되었는데, 지금은 세 개만 남아있습니다.



멀리 조선은행이 보이네요.






군산은 개화기 일본인들이 이주해오면서 발전한 도시입니다. 일본은 넓은 평야와 인접한 군산을 개항하도록 계속 요구했고 바야흐로 1899년에 군산항이 외국인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군산은 외국인이 눈치 보지 않고 자리잡고 먹고 살 수 있는 조계지가 형성되었고 행정기관들이 등장하여 도시의 면모를 갖추어갔지요. 군산 구도심의 격자형 구조가 이 시기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본정통, 전주통, 대화정, 욱정, 명치정 등의 이름을 붙였지요.


1911년 각국조계지도. 옛날 지도 보자니 난감하지요? 격자형으로 구획된 것만 확인하고 넘어갑시다.





1905
년부터 1925년까지는 바닷가에 항구를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철도와 도로가 건설되면서 군산 시가지가 점차 정돈되고 확장되었지요.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항만공사는 계속 확장되었고 부잔교(뜬다리 부두)가 지어지면서 거대한 항구로 변모해갑니다. 군산은 썰물 때에도 2천 톤급 기선 3척이 댈 수 있는 항만시설이 완료되었고 25만개의 쌀가마니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세워졌습니다. 철도선도 늘어나 하루 150량의 화차가 군산을 드나들게 되었지요.



1920년대의 본정통. 소실점 근처 왼편에 뾰족한 지붕 보이는 건물이 조선은행이야요.



1923년 군산지도. 철도와 도로가 확장되었다는 것만 알면 되겠죠?




1936년에 군산은 부산 다음으로 일본에 쌀을 많이 실어 보내는 제2의 미곡수출항이 되었습니다. 군산항에서 출항하는 쌀가마니의 양은 전국 수출량의 25%나 되었다고 합니다. 전북의 드넓은 평원에서 수확한 누런 곡식들이 이곳에 군산항에 모여들었지요. 항구의 넓은 터에 쌀가마니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산처럼 쌓인 쌀가마니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구경해보려면 군산해관에 가보면 됩니다. 군산항을 드나들던 배는 무조건 거쳐야 하는 군산해관(해관은 세관의 옛 이름입니다.). '호남세관자료관'이라는 이름을 조촐하게 내걸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 군산항의 모습을 자료사진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참 예쁜 벽돌건물이죠? 옛 군산해관입니다.



군산해관은
1908년에 지어졌습니다. '꽃처럼 빨간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만든' 이 건물은 뾰족한 지붕이 무척 이국적입니다. 러시아 미녀처럼 고전적이고 날카로운 매력이 있는 이 건물은 지금도 예쁘게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군산을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이지요.



옛날에는 왼편에 있는 현관으로 들어왔겠지만 지금은 뒷문으로 출입합니다.


층고가 높은 중앙홀. 햇살이 차분하게 들어옵니다.



볕이 잘 들어오는 현관 홀 안쪽에 층고가 높은 실내 홀이 펼쳐집니다. 양쪽으로 복도가 이어지고 복도는 방으로 연결되지요. 실내 홀은 항구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대기하면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던 곳이겠지요. 지금은 자료사진들이 쭉 전시되어 있을 뿐 앉을 만한 좌석은 없습니다. 옛 군산항 풍경이 이랬구나, 진짜 쌀가마니가 쌓였었구나. 싶습니다. 어리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쌀가마니를 바라보는 사진도 있습니다.


 

군산 내항의 축항공사 모습



군함이 정박할 정도로 큰 항구가 되었지요.




쌀가마니가 쌓여있는 창고. 쌀가마니가 조그만 주먹밥처럼 보이네요.



그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알기가 어렵습니다. 쌀이 가마니째 실려나가는 것을 수십 년간 보아온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항구는 시끌벅적했을 겁니다. 뿌우, 뿌우, 큰 배가 내뿜는 우렁찬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짐을 실어 나르는 일꾼들이 발걸음이 다급해졌겠지요. 농장주들은 쌀과 돈을 맞바꾸며 흐뭇하게 미소를 흘렸을 테지요. 그리고 그들은 은행에서 돈놀이를 하거나 미두취인소에 들러 잠시 노름을 즐겼을 테지요.



그들의 돈주머니를 챙겨주었던 은행들이며 무늬만 선물거래소지 노름터나 다름 없었던 미두취인소도 내항과 바짝 붙어있습니다. 조금 건너에 조선은행이 보입니다
.
복원공사를 하느라 온통 비계로 가려놓았군요. 건물의 규모가 거대합니다. 마치 노쇠한 장군을 보는 것처럼 허허로운 느낌이 듭니다. 한때 위용이 대단했던 조선은행은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오면서 뱃속을 모두 털어내고 허허롭게 서있습니다. 어떻게 복원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원래는 단층건물이었다죠. 층고가 높고 단단하며 위용이 대단한 건물입니다.



한창 잘나가던 시기의 조선은행. 출입구가 독특합니다. 앞에 서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건물 높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지요.


1920년대말의 군산내항 풍경. 조선은행이 떡하니 있지요.



이 건물을 수리하면서 상량문 현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1920 12월경에 공사를 시작하며 당시 은행의 지점장은 니시야마 기쿠헤이, 시공자는 시미즈 구미, 공사감독은 미우라 기치, 설계자는 나카무라 요시헤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나카무라는 조선은행 본점(현 한국은행 본점-서울)과 부산지점을 설계했던 인물이지요. 한국전쟁 후 한국상공은행(한일은행)에서 인수하여 은행으로 사용하다가 1981년에 개인 소유로 바뀌어 예식장, 나이트클럽으로도 이용되었습니다. 1990년에 화재가 난 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20여 년을 방치되어 있었던 뼈아픈 기억도 있지요. 2008년에 군산시가 매입하여 등록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나이트클럽의 이름이 플레이보이였던 것인가요? 창문에는 못다 지운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원래 단층 건물이었다가 예식장이 되면서 1,2층으로 나뉘고 계단도 생겨났던 것이지요. 조선은행 중 경성을 제외하고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답니다.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의 옛 모습.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었던 일본제18은행은 건물만 남아있을 뿐, 내부는 벽장 몰딩 외에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속건물이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은 비바람, 눈바람에 시달린 듯 점점 폐허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에는 살짝 열린 대문으로 슬쩍 들어가보았습니다. 두 개의 건물은 사무실 겸 주택과 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창고에는 커다란 금고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사무실 내부는 뭐가 뭔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황폐합니다.

외관은 손본 흔적이 역력하죠.

 

내부 몰딩장식.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등이 남아있습니다만,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은행 건물 뒤에 부속건물이 좀더 일본식 가옥 느낌이 들죠.


내부는 폐허더미가 되었습니다. 창고 건물 벽을 보는데 이렇게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떠군요. 벽돌 위에 덧바르고 덧입힌 것들.




내항의 동 이름은 장미동입니다. 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쌀을 쌓아둔다는 의미랍니다. 장미동 군산내항에서 느낀 오롯한 무상감은 김제, 정읍의 널따란 평야를 보면서 점점 비장해졌습니다. 다음 번에는 보수공사를 끝내고 개방한 히로쓰 저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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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군산해관

전북 군산시 장미동 49-38번지
전북기념물 제 87호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전북 군산시 장미동 23-1, 12 번지
등록문화재 제374호
 

옛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

전북 군산시 장미동 32번지
등록문화재 제372호 

 

 

좀더 읽어볼 책


 

채만식 / 탁류

단편적으로 흩어진 역사의 장면장면과 도저히 이어 붙이기 힘든 감성적 부분을 결합하는 것은 문학의 역할이 아닐런지요. 그래서 역사를 담고 있는 문학 작품에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채만식의 <탁류>는 1930년대의 군산을 가장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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