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공간의 탐닉>이라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운영을 마친 폐소각장을 문화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전시는 흥미진진했고 공간은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계속 궁금해지는 장소였다.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있는 쓰레기소각장. 높다란 굴뚝이 있는 7층 높이의 플랜트가 재활용될 대상이었다. 7월에서 8월까지 열린 첫 전시회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10월에도 대안미술공간들과 협업한 결과물을 선보인다고 한다. “여가를 즐기려는 시민들보다 산업시설물의 재생에 관심있는 전문가들이나 학생들이 곳곳에서 찾아오더군요.” 프로젝트 매니저 손경년 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건물을 바다보는 관점이 점차 바뀌고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아직 설비가 들어차있는 플랜트는 개방하지 않은 채 반입동과 관리동의 두 건물에서 열린 전시회는 그동안 보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갤러리 공간을 벗어나 일상의 영역에 놓인 예술은 공감의 시선 속에서 빛났다. 반입동의 일부는 플랜트와 연결되어 있는데, 높이 37미터의 뻥뚫린 공간을 곧장 바라볼 수 있었다. 너울거리는 천과 음향의 묘한 리듬이 어둡고 거대한 공간에 뻥뻥 울렸다. 어떻게 여기에 작품을 걸 생각을 했을까? 관리동 지하실은 물이 차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설치되었다. 습기와 수증기와 흐릿한 빛 속에서 공간은 아련한 기억들을 뱉어냈다. 박병래 작가의 <유틀란디아>라는 영상 작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작품 자체는 이해될 듯 말 듯한 지점에 있었지만, 고인 물에 비쳐 두배로 증폭된 영상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습한 냄새와 서늘한 공기는 시청각적인 작품을 촉각과 후각으로 확대했다. 작품이 걸리지 않았더라도 이 공간에 들어온 것 자체가 예술적 체험이었다. 


공개되지 않은 플랜트는 몇몇 예술가들과 함께 탐방했다. 전기가 끊기고 먼지가 쌓이긴 했지만 모든 게 질서정연했다. 천장으로 새어드는 빛이 어둠을 가르며 군데군데 건물의 형태를 비췄다.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모두의 기대감이 아우성쳤다. 스무명 남짓은 고고학 탐험이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비밀의 땅을 밟았다. 기계들의 잔해는 발굴 현장 같았고, 제어실의 버튼들은 어둠에 파묻힌 보석처럼 빛났다.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자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수도권의 중소 도시의 풍경이 드러났다. 우리가 본 것들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다들 놀라움과 고민스러움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탐방의 인솔자인 부천문화재단 류자영 팀장의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이 장소가 기계미학을 체험하는 예술의 장소로만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지자체와 싸우고 협의하며 만들어낸 특별한 시민의 역사가 깃들였던 것이다. 1995년 소각장이 지어질 무렵 부천시는 인접한 6개 도시의 쓰레기를 모두 반입하는 광역 소각장을 추진다가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수년에 걸친 복잡한 싸움을 거치면서 소각장은 규모를 줄였고 소각로의 내구성이 허하는 15년 동안만 사용하는 협의안이 결정되었다. 15년 후, 주민과의 약속대로 삼정동 소각장은 운행을 멈추었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바뀌게 되었다.




삼정동 소각장은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를 만들고 의미를 영글게 하는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과연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을까? 난제는 곳곳에 있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훌쩍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게 최대의 단점이다. 자원과 환경을 연구하는 단체, 환경디자인을 실험하는 회사와 학교 등 전문집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된다면 어떨까?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서두르지 않을 겁니다.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가장 적절한 해법을 찾아갈 거에요.” 



어떠한 결론에 이르던 그 과정은 지난해야 한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빚고 욕심과 결핍을 드러내며 죽을 듯이 싸우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약속을 받아내고 약속을 지키는 과정과, 고민을 공유하고 더 좋은 것을 찾아헤매는 과정. 긴 투쟁으로 겨우겨우 협의를 얻어내는 이 순정한 과정의 중요성을 우리는 종종 잊지 않던가? 건축물은 다양한 목소리를 뒤섞으며 도시의 서사를 담아낼 것이다. 진정한 재생은 그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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