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을 돌아보면서 1호선 남영역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전철역 플랫폼의 동쪽편에는 예사롭지 않은 검은벽돌 건물이 서있습니다. 마치 묘비석처럼 특징없이 거대하게 서있는 건물 덩어리. 이곳이 남영동 대공분실이라고 일행이 말해주었습니다. 대.공.분.실. 이 말을 듣는 순간, 오싹한 한기가 배어나옵니다.
왠지, 과거 속에 사라져버렸을 것만 같은 건물이 눈앞에, 그것도 거의 매일 타고 다니는 1호선 전철 인근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대공분실의 조사실에서 고문을 당하며 죽었거나 죽음을 가까이 겪었거나 죽음을 넘어선 사람들 이야기를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그 남영동 대공분실이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오싹하도록 생생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건물은 속을 보여주지 않는 묵직한 어둠을 품고 서있습니다. 대공분실이 더 이상 대공분실의 기능을 하지 않으며, 문제의 장소인 조사실은 심지어 누구나 관람하고 그 역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우리가 과거사에 대해 이토록 오픈된 자세를 가지고 있다니요. 악명 높았던 대공분실은, 2005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1976년 치안본부의 대공분실로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지어졌습니다. 과연 건축가가 이 건물에서 자행될 일을 알고 설계를 한 것인가, 그렇다면 건축가의 윤리는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건축계에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지요. '남영동 1985'라는 영화가 개봉된 후, 대공분실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고 묻혀있던 김수근의 건물도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건축가는 고인이 되었고 건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침묵하는 가운데, 건물은 여전히 불편한 존재로 남아있습니다.
건축가 김수근은 벽돌로 조형물을 만들 듯이 시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는 건축물을 많이 남겼습니다. 대학로의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보면, 빛과 그림자가 아름다운 선과 면을 이루며 마음에 파문을 던집니다. 건축이 말을 거는 것 같고, 시를 읊는 것 같지요. 붉은 벽돌 외에도 공간사옥에서 볼 수 있듯이 검은 벽돌로 지은 건축물도 있습니다.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에도, 벽돌이 쌓아올린 면면이나 비례감, 창이 주는 율동감 등이 좋게 다가왔습니다. 막 지은 건물은 아닌거죠. 이름난 건축가가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작품의 하나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건물에 가까이 갈수록, 상층부의 검은 벽돌이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알고보니, 원래 건물은 5층으로 지어졌는데, 후에 2개층을 더 올려서 7층으로 증축했습니다. 그렇지만 조사의 용무는 5층에서 계속 진행했나 봅니다. 건물은 대공분실이라는 업무 특성상, '해양연구소'라는 간판을 단 채 위장했다고 합니다. 두꺼운 철문, 철조망으로 둘러싼 담도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그대로 두어 과거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겠지요. 내부는 리모델링이 되었지만, 현장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1976년 10월 2일 건물의 준공.
관리실, 옆에 있는 두 별관 건물, 조경, 뒤쪽에 테니스 코트까지 함께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인권센터로 사용중인 본관과 아동, 여성, 장애인 경찰지원센터로 사용되는 별관을 연결하는 부분.
벽과 기둥, 통과하는 문 등이 지루하지 않게 구성되었고 다양한 틈새 공간을 촘촘히 배치해두었습니다.
마치 골목을 걷는 것처 다양한 느낌의 장소를 거쳐가게 됩니다. 직원들의 야외 휴게시설이겠지요.
외부로 보여지는 벽은 단순한 벽면처럼 구성했지만 내부의 벽 하나는 요철을 두어 지루하지 않게 했네요.
이공간의 내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군요.
1호선 철로와 바짝 붙어있습니다. 빈번하게 지나가는 전철의 소음이 꽤 귀에 거슬립니다.
크고 작은 창이 리듬감을 줍니다. 문제의 좁고 길쭉한 창이 계속 공격 대상이 됩니다.
조사실의 창이 바로 좁고 긴 형태인데, 피조사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혹은, 피조사인에게
불편함을 주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거죠.
정면에는 큰 창이 있고 번듯한 출입구가 있는 반면, 피조사인을 끌고 올 때
철조망 담쪽의 작은 문으로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문제의 원형계단입니다. 5층까지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1층에 전시된 사진에는 콘크리트로 된 계단이 보입니다. 그런데, 1층에는 철제계단이군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콘크리트로 된 계단 공사 장면이 보입니다. 계단 옆의 사진은 1976년 공사 당시 모습입니다.
관람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갑니다. 당시 피조사인은 눈을 가린 채 차에 실려와 뒷문으로 들어오고, 원형계단이나 그 옆에 있는 3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조사실 복도는 마치 감옥같은 구조입니다. 리모델링한 후인지 보통의 아파트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어둠침침한 복도는 무척 불길하게 보입니다. 문에 달린 작은 렌즈는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게 아니라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피조사자들을 감시하는 수단이었지요.
(도면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9432.html)
문제의 도면입니다. 하지만 도면 작성 연도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정면도를 보면 1983년 증축된 도면인데,
평면도는 언제 것인지 사진상으로는 파악이 어렵습니다. 어쨋건, 조사실이라고 쓴 부분은 정확히 보이네요.
조사실에는 욕조와 변기 세면대, 침대의 위치 등이 자세히 그려져있습니다. 원형계단, 그리고 두개의 분리된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이렇게 상세한 도면을 보니, 김수근은 건물 설계자로서 윤리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건물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고 난후 김수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 이후, 아무런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던 걸까요?
김수근은 대공분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직전인 1986년에 사망했습니다.
(사진출처: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454)
콘크리트로 된 원형계단입니다. 안창모 교수님이 2005년 답사한 내용에 이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5층의 계단부분은 문이 잠겨있어서 인권센터측 안내자와 함께 있었지만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바깥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이 박종철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자료들이 4층 추모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작은 욕조와 움직이지 않게 박아둔 책상과 의자, 주황색 타일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게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다른 방은 모두 시설이 철거되고 리모델링 되어있는데, 이 곳은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이 방은 9호실로 박종철이 고문을 당하다 죽은 장소입니다. 1987년의 일입니다.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을 당했던 14호실은 좀 큰 방이었습니다. 내부는 리모델링되었지만,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붙여 놓은 흡음판과 검은 유리로 된 카메라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역한 공포와 말을 얼어붙게 만드는 폭력이 내 몸을 덮치는 것만 같습니다. 1987년부터 88년까지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괴로움은 더 커졌습니다. 고문기술자라는 사람들의 잔혹한 폭력은 언어로 쓸수가 없군요.
안내를 맡아준 경찰청 홍보 담당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곳의 목적은 조사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조사를 할 때, 밀폐된 시설에서 하지 않습니다. 이 건물의 조사실은 구조로 보면, 조사가 아니라 구금시설입니다. 형이 확정된 사람을 구금하는 시설이죠. 서대문형무소처럼요. 조사를 진행하는 장소의 구조가 구금시설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그 자체가 인권 유린입니다."
그러므로, 이 조사실은 존재만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현재, 대공분실은 보안분실로 이름을 바꿨고, 남영동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옮겨갔습니다.
이 장소에 경찰인권위원회가 들어온 것은 2005년 노무현대통령 재임하의 일입니다. 불편한 과거사를 공개하며 현재와 화해를 시도하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사건에 개입된 소위 고문경찰관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추모하고 애도하는 일만으로 가슴이 답답했던 것은, 근절되지 않았으며 처벌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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