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역에서 옛 거리를 따라 걸어간다. 오래된 가게, 청과물시장, 서점, 그외 알게 모르게 형성된 거대한 시장들이 즐비하다. 여전히 건물들은 빡빡하게 거리를 채우지만 비어있는 건물이 태반이다. 오래된 거리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벽돌로 지은 작은 상가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재미나게 변화시켜볼 생각도 하게 될 것 같다.
큰 도로변의 풍경과 한 켜 안쪽의 골목길의 풍경이 또 다르다. 상가가 형성되었다가 쇠락한 지점에 배다리 헌책방골목이 연결된다. 오랜만에 배다리를 걸었다. 예전에 꽤 북적거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장소들을 기웃거려본다. 45년이 족히 된 아벨서점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토요일임에도 거리를 찾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재미난 동네 가게 몇 군데는 임대표지판을 붙인 채였고, 주민텃밭은 휑했다. 무엇이 동네의 활력을 앗아갔을까. 슬프게도 평화롭고 안락하게 걸을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도매창고와 큰 트럭이 오가는 거리는 아무래도 상업지구나 관광지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판단을 유보하면서도, 배다리 동네의 위축에 마음이 아프다.
인천은 시장마다, 마을마다, 예술가들을 불러모으는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숭의평화시장 레지던시 프로젝트 외에도 용일자유시장 재생 프로젝트인 <돌아와요 용자씨>도 요즘 동구에서는 이야깃거리다. 공가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여진 이런 활동들은 비어있는 장소들을 활용하기 위한 시도들이다. 이들 장소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예술의 일상화인가? 그러나, 결국 빈집은 빈집으로 돌아가지 않던가.
결국 정주자들이 거처하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떠나고 쇠락한 지역을 예술가들에게 의존한다는 것도 옳은 방법이 아닐 것이다. 인천 구도심을 돌아보며 생각하게 된 것은, 인천은 규모에 비해 정주자가 적어 도심이 휑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골목마다 교통과 인프라가 이미 구현되어 있는 구도심을 내버려두고 매립지에 신도시를 만들다니 뭔가 이상해도 많이 이상하다.
지난번에 들어가보지 못한 장소들을 좀더 구경하기 위해 다시 인천으로 향했다.
수봉다방과 숭의평화시장이다.
수봉다방에는 3부에 걸쳐
이 공간에 관심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수상한 작당을 펼치고 있었다.
숭의시장 내의 레지던시 공간이다. 오래된 건물의 내부는 흥미를 자아낼만큼 기묘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옛 건물답게 상가건물에도 연탄보일러시설이 있고, 또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바꾼 것들이 눈에 띄었다. 건물 한채는 계단을 따라 4층 옥상까지 이어져있다. 요즘 보기 드문 형태의 구조이기에 무척 관심이 갔다.
숭의평화시장 레지던시는 마을만들기 활동가, 다문화운동 기획가, 그리고 예술가들이 모여 각자가 따로 또 함께 빈공간에 스토리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곧 말끔하게 리노베이션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공간에서 이루어질 일들이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곧 조금씩 터져나오게 될 것 같다.
수봉다방과 숭의시장 공간을 둘러보며, 이런 장소들은 '어떤 예술'로 인해 인천의 시대적,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중력지대라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가 앓고 있는 문제, 사람들의 인식, 자본의 문제, 개인적인 비전 같은 것들이 그 무게를 증발시킨 채 오로지 공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장소에 설치된 작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떤 소통의 매개가 되기 위해 아이디어를 부려놓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유쾌한 행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이 동네에서 너무나 생소해서 반가운 개념이 아니던가.
작은 호흡, 작은 환기, 작은 움직임. 작은 꿈틀거림. 그것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생동감같은 것.
오래되고 비어있다가 어찌할바몰라 삭아가는 공간들이 새로운 기운을 얻어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다시 한번 이 공간에 머물러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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