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권진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아틀리에를 찾아갔다.




 

신성한 공간, 예술가의 작업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영감이나 감수성을 뚝뚝 떨구고 다니는 사람들은 아닐진대, 예술가가 탄생한 장소나 그들의 예술이 탄생한 장소에 가면 특별한 영감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목공 작업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어느 예술가(그는 스스로 목수라고 부른다)의 작업실을 가볼 기회가 있었다. 그가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들어놓은 작품들은 우리 같은 범인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신기한 것이 많았고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 , , 드라이버, 가위 등등 평소에 쉽게 볼 수 있는 공구들임에도.

 

창조적인 작업이 탄생하는 공간을 엿보면서 우리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예술가의 숙성된 작업 도정 속에 스며든 창조의 열정이 아닐까? 작업실에는 예술가의 상상과 아이디어가 발현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촘촘히 담겨있으니까.

 

공간을 이루는 것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도 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남기고 간 추억이나 체취, 흔적들이 아닐까 한다.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신기하게도 그 장소의 정취를 만들어낸다. 예술가의 작업실이라니, 얼마나 신성한가? 나는 그 열정의 기운에 전염되기를, 그의 예술혼이 내 살갗을 파고들기를 기대하며 슬그머니 발을 들이밀곤 한다.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


권진규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 1940년대부터 조각을 시작하여 죽음을 맞이한 1973년까지 그의 삶은 조각, 하나뿐이었다. 추상주의의 유행이 불꽃처럼 번지던 1960년대에도 또렷한 사실주의 조각에만 몰두했던 조각가였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주로 빚었다. 지원의 얼굴, 정재의 얼굴, 그가 만난 수많은 얼굴들이 흙으로 빚고 불꽃으로 구워졌다. 지극히 섬세한 얼굴에는 감정과 감각의 부스러기를 절대적으로 배제한 채, 고요한 명상, 흔들림 없는 순진함만 담고 있다.


 

권진규의 회고전은 2010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다. 심연에서 사색하는 듯한 인물 조각이 권진규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조각가는 이른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조각이 탄생하고 소멸하던 아틀리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성신여대 인근 높은 지대에 위치한 작은 한옥집. 그곳에 2층 높이의 어두운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은 그의 조각과 닮았다. 그곳에는 감정과 감각의 절대치를 끝까지 밀어 올린 후의 고요함, 대폭발 후의 침묵이 자리잡고 있다.

 

조각가는 삶의 끝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가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 목을 맸다. 조각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그 공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그 공간은 조각가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그날을 이야기한다. 나는 건축가들로부터 공간이 이야기를 한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침묵의 소리였다. 묵직한 기운이 가슴을 누른다.



조각가의 아틀리에. 관람객을 위해 영상물을 상영한다.

 

2층 높이의 어두운 작업실에서의 권진규.

 

 

 

권진규의 지원의 얼굴은 미술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이건만,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조각가는 아니다. 2010년에 덕수궁 미술관에서 권진규 회고전이 열려 그의 작품의 진면목을 소개하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전시회는 일회성이지만 그가 수많은 작품을 남겼던 작업실은 일년 365일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건물이 남아있다는 것이 눈물나게 감사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작품에서 감동을 얻은 사람들은 조각가의 뒤를 밟아 아틀리에까지 이르곤 한다.

권진규와 여동생 일가가 살았던 한옥집과 아틀리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이 건축사적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근대사의 중요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가 생을 보냈던 곳이라는 상징적인 가치, 문학적인 가치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힘찬 동물 조각은 일본에서 먼저 호평을 받았다. 고요하고 구도적인 얼굴 조각과는 달리 선명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조각가의 작업도구들도 한켠에 놓여있다.





이 건물은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관리하고 있다. 유족들로부터 한옥집과 아틀리에를 기증받아 한옥을 고치고 아틀리에를 복원하여 권진규를 알리는 공간으로 활용한 지 5년째. 아틀리에는 조각가의 손길이 머문 흔적 그대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한옥집은 예술가(특히 조각가)가 머물면서 작업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공간을 더 잘 활용하는 방안을 없을까,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공간을 알리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운영진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찾아와주지 않는 유적이나 문화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보존을 위한 보존이 아니라, 활용하고 소통하는 문화재 보존의 사례를 우리 땅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5월 4일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아틀리에 운영 방안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5월 4일은 권진규 조각가의 기일이다. 참가자들은 조각가가 좋아하던 해바라기를 헌화한 후 조각가의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통인동 이상의 집


북촌과 서촌에는 근대시기 예술가들이 삶을 영위했던 집과 아틀리에를 복원하느라 여념이 없다
. 북촌에는 한국근대미술사 책에 초반에 등장하는 고희동 화가의 고택이, 서촌에는 이상범 화가의 고택과 작업실이 한창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이상범은 궁궐 내부의 벽화제작에 참여할 만큼 뛰어난 화가로 알려져 있다). 두 건물 모두 올해 혹은 내년이면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인 서촌.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지역인 통인동, 통의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사직동, 청운동, 효자동 등의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근대기에 형성된 한옥이 많고 곳곳에 살아있는 오래된 골목길마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뿍 담고 있기에 서촌 답사에 나서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서촌을 돌다 보면 시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곳이며 이중섭과 이상이 태어나 자랐던 곳을 발견하게 된다. 윤동주 하숙집은 이미 다세대주택이 들어섰고 작은 비석으로 존재하지만 이상 집터는 좀더 특별하게 대우받고 있다.

 

 

 

보수한 흔적과 간판을 적당히 덜어내니 오래된 한옥이 등장했다. 이상이 살던 터에 지어진 한옥이다.



이상의 집은 새로 이상기념관을 만들기 전까지만 운영되는 한시적인 프로젝트다.



ㄱ자형 미니 한옥 내부에 2층 전망대를 만들었다.



지붕에는 글자들이 마구 날아다니고.


서까래를 말끔히 정리했다. 타일 장식의 흔적도 남아있고. 시간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느낌이랄까.





통인동에 이상의 집이 있다
. 엄밀히 말하면 이상이 살았던 집터이다. 통인동 154-10번지의 집은 이상의 종가,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다. 이상은 친부모보다는 자식이 없던 통인동 백부 슬하에서 자랐다. 이상 김해경이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한 후에 백부가 사업에 실패하여 재산을 처분하게 되었고 통인동 집도 부분적으로 쪼개져 팔렸다. 이후 1932년에는 남은 집마저도 팔려서 온 가족이 효자동의 작은 집으로 옮겼다고 한다.

 

154-10번지에는 이상의 삶과는 관련 없는 한옥집이 남아있다. 오래된 한옥은 서점으로 사용되었던 전력이 있는데,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아름지기라는 단체가 이상을 기념하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상의 집이라고 명명된 이 건물은 기념관이 세워질 때까지만 존재하는 한시적인 장소이다.

 

동시대 예술가들은 이런 장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음악, 무용, 건축, 미술, 혹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작은 전시회도 하고, 답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때로는 공연무대를 꾸미기도 한다. 독특한 예술세계를 보여준 이상. 건축가이자 카페 주인이자 담배와 커피 애호가이자 문인 친구들과 함께 시와 수필을 남긴 이상이라면 자신이 살았던 공간에서 예술의 크로스오버를 바라보는 일이 무척이나 즐거워하지 않을까?

 

 

 

이상의 집에서 열린 행사들. 이상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 미술, 건축, 문학 인들의 크로스 오버 모임이다.

 

작은 바에서는 커피도 팔고



이상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모인 음악가들이 리허설 중이다. 색다른 실험의 현장이다.



이상의 집은 낮에는 커피를 파는 간이 카페테리아가 되었다가 낭독회장이 되었다가 음악회장이 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예술이 이어지는 이곳을 이끌어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상이라는 인물이다. 이상이 사망한지 70년이 지났건만 그의 예술혼, 그의 삶에 깃든 특별한 영감을 좇아온 예술가들은 끝내 이상의 집을 떠나지 못한다.



 

이상의 집 모바일 전시장도 서촌의 이곳저곳을 돌고 있다.



서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모바일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이상 기념관을 위한 다양한 스케치와 아이디어들이 모바일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이상의 집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 그런데, , 이 오래된 한옥을 없애고 다른 건물을 지어 이상기념관을 만들려 하나? 이상이 살았던 집은 아니지만 이미 수십 년 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래된 한옥집도 이상기념관으로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길 주변의 풍경을 만들어온 건물로서. 서촌을 이루는 풍경으로서.



잃어버린 예술가를 찾아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 이미 가버린 예술가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그가 살았던 장소를 더듬으며 그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에게 더 없는 위로를 준다. 예술가의 집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삶의 위로다우리들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열정이다.

 


 


찾아가보기>>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
주소-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3가 251-13
등록문화제 제 134호

**자유롭게 방문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한달에 한번씩 신청자들에 한해 입장합니다.
문의-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www.nt-herigate.org

통인동 이상의 집
주소-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



더 읽어볼 책>>




꾿빠이 이상/ 김연수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이상의 마지막 순간을 소재로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추리물 보는 듯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
현재 품절 상태인 것을 보니 곧 개정판이 나오려나 보다







화첩기행2 / 김병종
권진규와 서울이라는 챕터를 참고하면 좋을 듯. 더 좋은 자료를 들라면
2010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권진규 회고전 도록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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