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건축가 김수근의 건물 중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 있는가 물어보았다. 그도 건축가다. 


"음, 세운상가?"

별로 고심하지도 않고 툭 대답을 던진다. 

"그건 왜지?"

"중고등학교 때는 종로에 나와서 놀았으니까. 그 거리가 너무 좋은 거지. 종각에서 청량리까지 걸어가고 그랬어."



나도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꽤나 걸어다니곤 했었지. 나의 기억과 그의 기억은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을까?



"세운상가는 말이야......좋은 거 팔던데지."

"좋은 거?"

"길 따라 걸어가다보면, 아저씨가 슬그머니 나와서 은근히 말하는거야. -좋은 거 있어요.하고. 그게 엄청 부끄럽고 그랬는데.."


그 좋은 것 때문에 종로5가 길모퉁이에서 세운상가 건물이 슬쩍 보일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것이다. 십대들이 시대를, 금전을, 정신을 한 뭉텅이씩 저장잡혔던 장소가 바로 거기 세운상가였던 것이다. 











세운상가,하면 소설가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가 생각난다. 알전구 아래서 고개를 숙이고 그림자를 내려다보는 은교 양, 가동과 나동과 다동과 라동과 마동으로 구별되는 전자상가에서 접수와 심부름을 맡고 있는 그 은교 양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의 연인 무재 군은 트랜스를 만드는 공방의 견습공으로 일한다. 




"여러 달째 비어있는 가게가 여덟개 건너 하나씩이라 쇠락해가는 분위기를 감출수 없었지만 다섯 개 중 그나마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이었다. 일년 내내 그늘져 어둑어둑한 주차 공간을 향하고 있는 일청에서는 난로나 선풍기나 라디오 같은 소형가전을 팔았고, 이층부터 사층까지는 전자 기기에 사용되는 부품과 음향 기기와 빗자루며 대걸레 같은 생활용품을 파는 협소한 가게들이 장사가 될까 싶은 분위기로 어떻게든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으며, 수리실이 문을 열어 두고 있는 오층에서는 다른 층보다는 조금 폐쇄적인 분위기로 창고며 보석 감정원이며 무선 연구실이며 무엇을 연구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연구를 겸하며 도청을 하는 수상쩍은 사무실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무거운 짐에 쓸리고 닳아 모서리가 뭉툭해진 계단을 내겨가고 있을 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황정은 소설 <백의 그림자> 중에서 




이런 분위기, 그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낡고 어둑하고 오래된 그것이 아니라, 조금 더 의문스럽고 미로같아서 그곳에 있다보면 마치 어둔 밤에 길 떠나는 피노키오가 된 기분이이었다. 그곳은 쇼핑몰처럼 흥청대지 않고 시장처럼 번잡하지 않았다. 그래도 엄연히 존재하는 어떤 거대한 존재같았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피노키오를 삼킨 것은 거대한 고래였던가? 피노키오는 그 뱃속에서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제페토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그 속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조립하며 만들고 있었던 아저씨. 그러므로, 거대한 고래는 가나다라마로 나뉜 거대한 전자상가이며 그 어둔 뱃속에서 불을 밝히던 제페토 아저씨는 그 속에서 일하는 수많은 기술자들과도 같다. 미로같은 그 길을 따라 전체를 관통할 수 있었고 거대한 장소는 매번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고래의 거대한 몸이 죽음을 맞이하듯, 그렇게 침몰할 수도 있는 거였다.





"좋은 것"을 찾아서 세운상가로.




서울 도심지에 긴 빈터가 있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치달을 때 일본 본토를 무차별 공격했던 미 공군 폭격기가 서울(경성)을 공격해올 때를 대비하여 모두 19개의 빈터를 만들었다. 이를 소개공지, 소개공대지라 한다. 소개공지를 만들기 위해 모여있던 집과 길, 상점을 모두 없애느라 분주했으나, 이렇게 비어있던 터는 도시 빈민들이 무허가 거주지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서류상으로는 택지도, 도로도 아닌 완벽하게 비어있는 땅이었으나, 현실에는 강제로 끊어진 도시의 혈맥이 오종종 모여든 하꼬방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도심의 슬럼을 해소하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려는 모종의 노력이 1960년대에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종묘 아래 종로3가- 청계천 3가-을지로 3가- 충무로 3가를 연결하는 길이 1킬로미터 폭 50미터의 소개공지는 서울의 도시계획의 성과를 보여주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탄생하는 위치가 되었다. 1966년부터 1968년에 거대한 함선같은 육중한 주상복합 건물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세운상가다. 연건평 62,284평이며 2007개의 점포와 사무실, 177개의 호텔 객실, 851개의 아파트가 있었다. 총공사비는 44억이며, 서울시에서 구상하고 현대, 대림, 풍전, 신풍, 삼원, 삼풍건설회사가 참여했다. 


세운상가아파트를 구상한 이는 건축가 김수근이다. 얼마전 부도처리된 공간건축의 창립자이며, 얼마전에 아라리오갤러리 김창일 회장이 구입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비극에서 벗어난 그 공간사옥을 설계한 인물이다. 



세운상가가 특별했던 이유는 압도적인 규모뿐만 아니라, 입체적이고 새로운 공간 기법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공중보행데크를 두어 차로와 보행로를 분리하여 입체적으로 주변과 연계하는 계획, 상업시설과 주거 시설 업무 기능을 분리하고 연결해주는 개방공간을 배치하는 계획, 채광과 환기를 위한 아트리움을 두는 것 등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운상가를 세운상가답게 했던 특별한 계획들은 시공단계에서 모두 배제되어, 반쪽짜리 완성품이 되었다.







서울학연구소 저, 마티에서 출판된 <청계천, 청계고가를 기억하며(2009)>를 살펴보면 거대한 세운상가를 좀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4개의 건물군이자 모두 8개의 상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때론 이 모든 상가를 통틀어 세운상가라 부르기도 하고, 앞의 두 상가만 세운상가라고 하기도 한다. 계획당시에는 가장 앞선 상가는 현대상가 아파트와 아세아 상가라고도 했었다. 불도저라 불리던 당시 김현옥 시장이 '세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세운상가 A.B.C.D 동이거나 가,나,다,라 동으로 불린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진양상가이고 가장 작은 곳은 대림청구상가다. 


 


세운상가가 한창 공사중이던 1967년 7월의 동아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서울시가 불량지구 개발사업의 하나로 민간투자 44억 원으로 세워지는 아파트는 앞으로 D지구에 들어설 22층짜리 국제관광호텔을 포함, A.B.C.D 4개 지구 1만 5천평 대지에 8층, 10층, 12층, 13층짜리 건물 9개가 차례로 열을 지어 내년 여름철까지 모두 들어서면 하루10만 여명의 시민이 이곳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략)


서울의 상가경기 중심지는 그동안 종로, 명동, 소공동, 무교동의 순으로 이동을 거듭, 멀지 않아 이 상가 아파트 지역으로 옮겨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탓인지 동 상가의 임대료도 아주 높아 3평짜리 점포 1개에 70만원씩하며 이주위의 땅값은 작년의 5,6만원에서 15만원으로 뛰어올랐다. 

아파트의 구조는 1~4층이 점포, 5층 이상이 아파트로 되었으며 3층 양편에는 건물과 건물을 연결, 종로3가에서 대한극장 앞까지 고가 산책도로가 가설되며 5개의 공원, 21대의 엘리베이터, 주차장, 스팀, 교환전화시설을 갖추며 동건물 주민만을 위한 동사무소, 파출소, 은행, 우체국 및 국민학교 등 공공시설도 곧 들어서게 된다고. 





순차적으로 개장하게 되는 건물의 준공식에는 대통령 내외도 참석하여 물건을 구입했고, 더 목좋은 매장을 갖겠다고 상인들끼리 쟁탈전을 하기도 했으며, 분분별한 경품과 폭리 의혹 등이 이어졌다. 비싼 임대료, 지속적으로 오르는 보증금으로 철시가 이어졌다. 사업에 실패한 점주는 건물에서 투신했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이주민들은 여전히 분쟁하고 있었다. 설계에 문제가 있어 보완한다는 뉴스, 설계 문제로 재건축한다는 뉴스도 이어졌다. 세운상가가 다른 상가와 차별점을 가졌던 부분, 도시 내의 랜드마크로서 지역발전과 연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자동차도로와 공중보도의 분리와 입체적인 연결은 물건너 갔다. 옥상정원은 조성하지 못해 썰렁한 시멘트 바닥이 드러났다. 초등학교도 인가를 받지 못했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서서히 빠져나간 자리를 사무공간이 채웠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상권의 부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좌절되었다. 서울시는 1970년대에 이르러 강남 개발에 착수했고, 명동에는 백화점거리가 조성되어 상권이 더욱 공고해졌다. 용산전자상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니, 세운상가의 주요 품목인 전자부문이 타격을 입었다. 거대한 함선은 좌초할 운명에 직면하고야 만다. 






남아있는 것들과 되살린 것들








청계천을 따라 세운상가를 찾아갔던 날, 좋은 것이 많아서 늘 두근거렸다는 그 앞에서 남편은 말이 없었다. 가장 앞에 있던 건물 한동이 세운초록띠 공원이라는 이름의 빈터가 되었기 떄문이다. 스산한 녹색들이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노래방기기 도매상들이 즐비한 까닭에 직교하는 길을 따라 건물 옆 도로를 걸어내려오는 내내 매장은 노래방 기기와 조명들로 가득했다. 상가마다 전자 컴퓨터 반도체 조명 인쇄 귀금속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아파트쪽도 올라가보았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공간은 아트리움의 빛과 복도의 그늘이 미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고 주거보다는 대부분이 사무실로 보였다. 내부는 잘 순환되고 길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기능적으로 공간을 풀어냈으나 아트리움의 규모가 작아서 기대했던 만큼 환한 공간이 되지는 못했다. 


세운상가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전 서울시장이 상가 일대를 철거하고 녹지대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소개공지로 한때 거대한 비어있는 땅이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계획안이다. 수익도 불분명하고 효과도 장담할 수 없는 세운상가 철거안은, 첫번째 건물을 하나 없앤 후에야,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나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철거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자생적인 흐름을 모두 잘라내는 거대한 손은 사라져야 한다. 그는 왜 세운상가에 눈독을 들였을까? 엄청난 돈을 들여서 거대한 녹지를 만들겠다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대림상가 옥상에 서보고서야 알았다. 그 이유를. 










서울을 거쳐간 온갖 시대가 뒤섞여 적당한 시점에서 멈춰버린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거대한 상가가 아니라, 자잘하게 뿌리박은 넓고도 촘촘한 동네였구나. 

여길 모두 쓸어서 초고층 오피스 단지로 개발하려고 했던 거구나. 


인위적으로 세운 거대한 상가 옆에는 자생적으로 뻗어나간 장사기계공구상가를 비롯해서, 마치 장기와 혈관과 신경처럼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꿈틀거려온 동네가 미로처럼 뻗어있다. 이곳에는 심지어 100년전 골목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주택이 틀림없는 몇몇 집들은 기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염연한 풍경 앞에서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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