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답사 네번째, 오늘은 삼각지입니다. 삼각지 전철역과 한강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1972년에 지어진 삼각아파트와 그쪽의 경성전기회사의 창고 건물 외에도 일제 강점기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발견했습니다. 비어있어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물도 있고 지금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궁금한 건물도 있습니다. 


삼각지라는 지명의 연원은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데, 한강과 서울역, 이태원으로 향하는 세갈래길을 뜻하며, 경부선 철로가 건설된 후 생겨난 이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각지 바로 아래에 삼각맨션이 들어와있지요. 삼각맨션 뒤에 역시 삼각형의 부지가 있고 오래된 창고 건물들이 여러 채 있습니다. 과연 어떤 용도의 건물인가 싶은데, 옛 지도에는 이 지역으로 전차철로가 들어가며 '일한와사00'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운영하던 가스회사였습니다. 이 창고부지는 어떻게 사용될까요? 




































한강로쪽으로 내려오면 이런 건물을 만나게 됩니다. 


1926년에 완공된 간조 경성지점 사옥인데, 건물 내부에 건축연도와 시공사의 이름이 새겨진 패널이 있습니다. 지금도 꽤나 웅장한 모양새로 적당한 장식이 아름답게 남아있는데요.  입구 오른쪽에서부터 건물의 뒷면까지는 보수한 흔적으로 벽돌타일 위에 보강하고 드라이비트를 칠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용산구 문화재>라는 책자에 실린 것으로 <조선과건축>이라는 일제강점기 건축전문잡지가 원 출처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조선과건축>은 일본어로 발간되던 잡지이며 조선에 지어진 최신 건축물들을 소개하던 잡지였습니다. 간조라는 회사는 압록강 철교와 한강 인도교를 시공한 철도회사라고 합니다. 이렇듯 용산에는 일본 기업체나 건설회사들이 지점을 설립하는 주요 장소였습니다.   











너른 부지에 신경써서 지은 주택 건물도 발견했습니다. 이 건물에는 어떤 사람이 살았을까요? 부지도 넓고 건물 규모도 크며, 현재는 건물 바로 옆에 창고가 있어 무역회사나 회사의 창고와 사무실 겸 주택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건물 뒤쪽에도 부속건물들이 있어서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상당히 넓은 부지의 주택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일본식 단층 건물로 보이는데요. 정원이 넓어져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주택 뒤에는 2층짜리 양식건물이 덧붙여져있다는 것이지요. 상업용도의 건물과 주거가 연결된 건물이겠지요. 지금도 그렇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삼각지에서 경부선철로쪽으로 향하다보면 일제강점기 상가 주택들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중 한 건물은 재미있게도 햄버거 가게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2층 내부에 목조 천장을 훤히 열어서 오래된 집의 냄새를 여실히 풍깁니다. 작은 집이지만, 이런 장소가 얼마나 재미있고 소중한지요. 오래된 집들을 보면서 한번 들어가서 내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런 욕망을 충족해준 곳입니다. 








이 건물은 규모도 크고 장식도 훌륭하여 특별한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출입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으니 주요 사옥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철도부지 주변인데다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어 개발에서 제외된 지역이겠지요. 시대를 짐작하게 하는 오래된 집들을 바라봅니다. 곧 어떤 식으로든 재개발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고가를 건너 철로를 지나갑니다. 경부선 철도의 서쪽으로 건너옵니다. 동네명은 문배동인데, 문배산이 있어서 생겨난 이름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지역은 용산공설시장이 처음 생겼던 장소인데요. 이후, 공장시설이나 그 배후 시설들이 자리잡은 곳입니다. 지금은 창고건물과 식당 등이 있습니다. 









남쪽으로 걸어내려오면 오리온 제과 공장이있습니다. 박공지붕과 벽돌 건물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지요? 

모리나가 공장이라고 용산 거주하시는 분이 알려주셨습니다.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 과연 어떤 이유로 생겨나와 지금까지 살아남아있는지 인터뷰를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러고보면 민중생활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연로하신 분들의 구술사를 남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에게는 가치가 높아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기 떄문에 가치가 높은 것이니까요.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를 지켜나가야하는 것이니까요. 










당고개 순교성지를 지나갑니다. 


신계동 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이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10여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장소입니다. 최근 서소문 순교성지를 공원화하는 사업이 공표되었던데, 서소문과 새남터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순교자가 나온 곳입니다. 신계동 아래로 내려오면 개발과 비개발 사이에서 신음하는 지역이 등장하다가 용산 역 주변 상권지역과 연결됩니다.



한적한 골목길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어렸을적 자주 마주쳤던 골목길이 아닐까요? 

집 밖에 내놓은 의자들이 정다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나 빛나는 하루를 살고 있겠지요. 

이들의 삶이 더이상 위협받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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