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마을이 아니라 백사마을이었습니다. 



중계본동 산104번지 일대에 앉혀진 마을이라 104마을이라 부른다고 하지요. 중계본동이라 하면 서울의 북동쪽 끝에 있습니다. 뒤쪽으로는 불암산으로 경계지어지고, 앞쪽 멀리서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보입니다. 집에서 조명하는 경치로 보자면, 서울의 어느곳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경사지에 층층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백사마을은 1967년 철거민의 집단이주촌으로 형성된 지역입니다. 

그동안, 군사제한구역,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가, 2000년이 되면서부터 이지역의 개발이 논의되었고, 작년부터 건축가 집단에서 기존과 다른 개발을 목표로 백사마을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아마 올 하반기부터는 계획이 완료되어 어떤식으로든 마을이 달라지게 됩니다. 



백사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예상보다 큰 규모에 깜짝 놀랐습니다. 노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에 이르러 가장 오른쪽 골목으로 걷기 시작해서 골목마다 오르락내리락 해보았습니다. 마을은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비어있는 소위 '공가'도 많았고 허물어진 집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아이들도 종종 보였고요. 낯선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하는 그런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소박하게 살아온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가 마을 전체에 감돌았습니다. 


그날, 봄날씨가 완연했습니다. 꽃도 피고, 연초록 잎사귀가 살포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어있지 않을까, 걱정하며 골목을 걸었는데, 오히려 그 폭발적인 생명감에 안도와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백사마을은 어쪄면 천사마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건 아마 답사가 끝날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툭툭 꽃망울이 터지는 봄이 마을 구석구석을 환하게 물들이는것을 보고나서 말이지요.  

 













판자촌. 철거민. 이주촌. 대기업 건설회사. 아파트 개발. 



이런 것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그동안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노후된 동네들이 비참하게 철거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 속에 살았던 시간과 묵혔던 기억들마저도 건축폐기물이 되어버린 적도 종종 있을 겁니다. 그것들은 버려 마땅한 쓰레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곤 하지요. 



무허가 판자집의 존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올라갑니다. 193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로 서울(경성)은 그야말로 집없는 빈민자들이 도시의 한켜를 이루고 있었지요. 광복후부터 월남민들의 이주, 전쟁 이후 피란민들의 이동 등 인구의 대이동이 있었고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으로 서울 경기로 일자리를 찾아 보여든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당시 주택 보급율은 50%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들은 허가되지 않은 땅에 소위 판자집을 짓고 삽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나왕 판자와 깡통 재료들로 집을 지었던 것이죠. 무허가 정착지에 형성된 불량주택들은 현저동 일대의 구릉사면, 노고산동, 신공덕동, 효창동, 후암동, 한남동, 장충동 약수동, 신당동, 옥수동, 금호동, 응봉동, 행당동, 창신동, 숭인동, 동숭동, 돈암동, 미아리, 답십리, 전동농, 이문동, 휘경동, 수유리, 흑석동, 노량진의 곳곳에, 도심지나 도심으로 접근하기 좋은 자리에 생겨났습니다.  택지개발과 도시 개발을 하면서 철거해야할 불량주택들이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불량주택 대책을 네 가지로 진행했습니다. 

1. 집단이주정착지 조성, 2. 불량주택 개선사업, 3.철거 후 시민아파트 건립 4. 광주 대규모 단지로 이주.



이와 관련해서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아파트 인생>이라는 전시를 관람해보길 권합니다. 광주 이주촌에 대해 늘 궁금했었는데,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우리의 마을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아파트 또한 어떤 식으로 변화해왔는지 보입니다. 






















백사마을은 청계천이 복개되고(복원이 아닌)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될 때,  천변에 살던 사람들과 영등포, 용산, 안암동 일대에서 온 철거민들의 집단 이주촌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역이 조성되던 1967년 경에 이미 수유지구, 망원지구 창동지구 등이 대규모 택지구역으로 개발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먼곳인 불암산 자락 구릉지가 선정되었다고 하는군요. 


이들에게는 임야지 8평과 블록 200장, 소형텐트 1개를 지급받았다고 합니다. 상하수도나 도로는 전혀 없었으며, 도로, 치안, 위생 등 도시안전망이 전혀 없는 장소였습니다. 시영버스와 공동우물만 있을 뿐이었따고 합니다. 블록으로 대충 지은 집에 겨우 지붕을 얹고 살던 당시에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 집들은 서로 합치고 남은 땅에 집을 지으면서 20평 정도로 집들이 커졌고 지붕도 집집마다 달라졌으며 개량된 양옥집도 들어오는 등 다양한 집들이 생겨났습니다. 번듯한 2층집도 있고 오래되었지만 마당이 잘 조성된 집도 생겨난 것입니다. 


주변까지 고층 아파트가 들어왔음에도 백사마을은 계속 개발에서 소외되어 왔습니다. 개발제한구역이기 때문이지요. 이제야 다른 개발을 하겠다며 도시재생 분야에서 믿음직한 건축가들이 투입되었는데, 거주민들에게 그것이 너무 늦은 일이 아니었기를 바라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는 예술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밋밋한 블록 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멘트 벽돌을 사이사이에 넣어 모양을 내는가하면, 기단이 되는 석재가 없으므로 시멘트 포대 째로 쌓아 덩어리를 만들었습니다.세월이 흘러 시벤트 포대 자루는 사라져버리고 단단한 시멘트만 남았습니다. 









벽돌로 틀을 잡은 건물 안에 기와지붕이 있는 희한한 집을 발견했습니다. 재활용된 집이군요.




옛 나무대문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환기구도 기능적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백사마을의 현관 앞에는 자그마한 문이 달린 창고같은 장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연탄을 보관하는 곳일까요? 열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골목길이 자유롭습니다. 건물과 건물의 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틈들이 사람 길이 되고 물길이 됩니다.  





집집마다 연탄난방을 합니다. 마을 입구에 연탄을 보급하는 장소가 있는데, 봉사활동하러 온 사람들이 지게에 연탄을 짊어지고 날라주기도 한답니다. 












점점 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여러 예술가들이 마을의 한쪽 귀퉁이 골목에 벽화를 그려놓았습니다. 백사마을이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하늘마을로 개칭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하늘색으로 담을 칠해놓은 집들이 꽤 많습니다. 






그 길에서 아빠와 딸아이를 만났습니다. 답사팀의 K선생님이 이야기를 던지며 카메라를 드니, 아이는 부끄러운 듯 숨다가 아빠 다리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밉니다. 그래도 깔깔 웃으며 여지없이 따사로운 봄을 터트립니다. 

 









점점 푸르러지는 길, 나무들은 주인 없이도 자라납니다. 

봄은 부르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찾아듭니다. 












봄 기운에 마음이 풀려버립니다. 오늘은 건축가와 여행자의 모입입니다. 특히 백사마을의 중심부를 계획하는 건축팀의 L은 오늘 답사가 몹시 인상적인 모양입니다. 길과 꽃나무의 포근함, 경사에 찬찬히 기댄 집들, 작지만 생활에서 나온 디자인 요소들, 이런 것들이 계획안에 포함되면 좋겠습니다. 



마을은 골목과 필지와 경사는 남겨 저층의 집들을 계단형식으로 짓는 구역이 있고, 왼쪽 뒷편의 공간은 20층 규모의 임대아파트가 올라갑니다. 

마스터 플래너인 승효상 선생은 아파트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사마을을 이루었던 오래된 집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또한 수십년을 지나오면서 불량한 재료로 지어진 위험한 주택이기 때문이지요. 


문화유산 지킴이를 하는 C는 말합니다. "골목과 필지를 남긴다고 해도 집을 모두 없애고 거주민을 뒤쪽의 임대아파트로 보내면 그것이 재생인가?"라고요. 이제 거주민이 힘겹게 살아온 마을은 외지 사람들이 몰려와 자기 삶을 꾸미겠지요. 



사진찍는 여행가인 K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이 마을의 생동감을 이야기합니다. 골목은 걷기 좋고 경사를 오를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져 압도되곤 합니다. 마을에는 누대도 있습니다. 폐자재를 모아 만든 쉼터이지요. 그곳에 앉으면 도봉산과 북한산의 기암괴석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 풍경은 이제 누가 보게 될까요? 














마을은 올 가을까지 계획을 완료하고 올해 말,내년부터는 개발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마도 백사마을은 마지막 봄을 맞이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백사마을에서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목련나무를 보았습니다. 살구나무와 홍매화가 터지듯 꽃이 맺힌 걸 보았습니다. 개나리가 지붕위에 무성하게 덩굴진 것을 보았습니다. 주인이 버리고 간 집을 감싸주는 푸른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마치 마지막 봄인 걸 알고 있는듯, 힘껏 봄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들을 내년 봄에는 볼 수 없을 겁니다. 




백사마을의 마지막 봄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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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weet-work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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