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을축년은 대홍수가 일어난 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7월부터 9월까지 네 차례의 폭우로 서울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강가의 마을이 물에 잠겼고, 육지였던 곳이 섬이 되는가하면, 한강의 북쪽에 붙어있던 잠실은 갑자기 생겨난 지천으로 인해 뚝 잘려져 물로 둘러싼 섬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도상의 큰 변화는 실제 사람들의 삶에는 청천벽력이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집이 물에 잠기고 쓸려나갔으며 한강철교의 교각은 무너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교량이 무너지고 철로가 제맘대로 쓸려나갔지요.  죽은 자들도 넘쳐났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부은 빗줄기로 전국에서 647명이 죽고, 6300여 호의 집이 유실되고 17000여호의 집이 무너졌습니다. 침수된 집은 46만호가 넘었고 논과 밭의 침수피해도 컸습니다. 총 피해액은 1억 300만원으로 집계되었고 이는 그 해 총독부 일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비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을축년대홍수는 '최대의 물난리'를 표현하는 특별한 명칭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습니다.


 










1925년 7월 11일과 12일 사이 중부지방을 통과한 태풍으로 황해도 이남 지역에 300~500mm의 비가 쏟아져 강들이 범람했고, 그 물이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7월 16~18일까지 두번째 태풍이 임진강 유역에 상륙하면서 최대 650mm의 비를 쏟아부었습니다. 임진강과 한강이 대범람하여 사상최대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영등포, 용산의 제방이 넘쳐, 그렇잖아도 도도하게 흐르던 한강이 더욱 넓고 망망해졌습니다. 동부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신천, 풍납리 등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습니다. 


위의 지도는 <경성부수해도>는 서울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준 두번째 홍수 이후 수해로 인한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파란색으로 색칠된 한강물이 도시 깊숙한 곳까지 침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강물이 남영동 일대까지 덮쳐 용산역 일대가 모두 잠긴 걸로 나타나고 있고, 마포 일대도 물에 잠겼지요. 


이 큰 비로 인해서 강변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선 마을 하나가 통째로 쓸려나간 잠실은 주민이 다른 마을로 이주했으며 땅이었다가 섬이 됩니다. 제방을 쌓기 위해 산들이 깎여나갔습니다. 대홍수로 풍립리 마을일대의 토사가 쓸려나가면서 옛 백제 토기가 무수히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로서 풍납토성의 연혁이 한성백제시대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에도 한강이 범람하여 홍수가 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1920년에도 용산일대가 물에 잠겨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민간에서 수재의연금을 모금하는 일도 생겼다고 하지요. 1924년 한강에는 수위 관측소가 세워졌습니다.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중간지점의 한강 둔치에 세워진 용산수위관측소는 한강변에는 최초로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1925년 1월에 정식으로 관측을 시작하고 1977년에 폐쇄되었으므로, 을축년 대홍수는 이 관측소에서 실시된 첫 홍수 관측이자 최악의 관측이 된 셈입니다. 








수위관측소는 일정한 프로토타입으로 지어졌는데요. 등대나 급수탑과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유사한 모양입니다. 탑신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상단부 시설이고 콘크리트나 돌, 벽돌 등을 이용합니다. 얼마전 소개한 법기 수원지 수위관측소도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지요. (http://sweet-workroom.khan.kr/59) 


탑신 뒤쪽에는 수위를 확인하는 수치표가 그려져있습니다. 탑신 내부에 물이 들어오는 파이프가 있고 물에 뜨는 부자를 설치해서 수위를 알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이 당시에는 꽤 첨단이었나 봅니다. 외부의 눈금표시가 있는 수치계는 오차를 알기 위해 육안으로 측정하는 보조장비라고 합니다. 옛 용산 수위관측소는 서울시 기념물 제18호이지요. 








원효대교 주변에서 바라본 한강의 풍경입니다. 한달쯤 전에 찍은 사진이라 다소 황폐한 모습이지만 강주변의 도로를 따라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많이 보입니다. 자전거로 달리다보면 한강 둔치가 지역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특히, 원효대교 인근 지역은 주변의 높은 건물들을 제외하면 마치 소래포구 같은 한적한 들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원효대교 북단 교차로 아래에는 예부터 지천이 흘렀던 수로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욱천이라 불렸고 그 이전에는 만초천이었다고 합니다. 제법 긴 하천은 이미 오래전에 복개되어 최종 수로만이 남아있습니다. 영화 '괴물'에서 등장한 장소라서 좀 눈에 익다,싶기도 할 겁니다. 이 하천은 지금도 욱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그 앞에는 욱천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일제식 지명에 대한 문제 제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이런 표지판도 서있지요. 



이제 시선을 돌려 강의 북쪽이 아니라, 강의 남쪽을 바라봅니다. 그 다리 아래에서 보이는 조각난 강남의 풍경은 반듯한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인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바로는 충분히 가깝지만, 생활 방식과 생각을 두동강 낼 정도로 한강의 위력은 지금도 강력합니다. 오래전 두려워하고 극복하려던 한강은 이제 이점을 취하는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좋은 날, 걸어서 강을 건너보리라 생각해봅니다. 그때의 강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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