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이라는 소설은 큐슈제국대학병원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을 중심이 됩니다. 1945년 전쟁 말기, 불시착한 b-29기에서 포로로 생포된 미군병사들에 행한 인체 해부사건이지요. 사건 주변으로 계속되는 전쟁과 공습과 절망으로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과 병원의 암투에 휘말리는 젊은 의사들과 잔혹하기 짝이 없는 군인들이 교차됩니다. 그들 대부분은 만연한 죽음과 절망 사이에서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느끼지 못합니다. 젊은 의사는 습관처럼 되뇌입니다. 우리 모두 죽을 거라고. 



소설을 읽으면서 그 당시의 병원의 풍경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소독약 냄새와 지금보다 덜 정교했을 수술실 장면, 차가운 기구들, 부족한 약, 추운 병실과 얇은 담요, 엉성한 식사, 흰색 모자를 썼던 간호사들. 그리고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들, 침묵하는 복도, 길쭉한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하늘과  마지막 잎새 같은 것. 병실의 다른쪽에는 실험과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들과 온갖 논문들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수술법을 찾던 의사들이 있었겠지요. 



서울에는 엔도 슈사쿠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병원 건물이 몇 채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바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병원(1928년)과 서울대병원 내부에 있는 대한의원 본관(1910), 그리고 용산 철도병원(1928)입니다. 철도병원은 2011년까지 중앙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사용되었으니, 최근까지 병원의 기능을 유지했던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의 풍경을 떠올리기에 딱 알맞은 모양새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몇 년간 방치되면서 건물 주변으로 돋아난 덩굴식물들로 인해 어둡고 낡고 미스테리한 모양새이지요. 




어느 날 근처를 지나가다보니 낡은 창과 둥글게 말린 건물 벽이 예뻐 보여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사진 속의 장소는 오래된 학교 같기도 하고 도서관 같기도 합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인물들이 등장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키지 않아 계속 미뤄뒀던 건물의 속 이야기를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문화재청의 기록화보고서는 건물의 역사와 이 병원의 특정한 역할과 의미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용산역은 경인선과 경부선이 생겨날 시절 종착역이었습니다. 서대문정류장이라 불렸던 마지막 역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용산에서 더 중요한 역이었지요. 모든 역이 용산으로 향했습니다. 용산은 1905년 이후 일본군영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인 거주지로 개발되었습니다. 용산에 병원이 생겨난 것은 1907년부터입니다. 철도를 놓으면서 철도 기술자들이 대거 등장했고 그들의 가족이 용산에 자리잡게 됩니다. 철도병원은 기술자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가족들의 질병 혹은 사고를 치료하기 위해 철도국에서 세운 특수병원이며, 대구, 대전, 목포, 평양, 원산, 청진 등지에도 세워졌다고 하는군요. 


이곳에서 진료받은 환자들은 모두 4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되는데, 1종 환자는 철도국 직원으로 직무상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2종 환자는 철도의 승객 중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3종은 퇴직한 직원이나 직원의 가족으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4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진료비와 치료비도 서로 차등이 있었고 1종 환자를 가장 우선했습니다.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에 철도 관사 하나를 개조한 동인병원으로 시작하여 1913년에 용산철도병원으로 개칭하고 필요한 건물을 세워나갑니다. 그동안 화재로 인해 여러 차례 무너지고 지어지고 했고, 1928년에 벽돌건물로 어엿한 2층짜리 건물이 완공됩니다. 원래 병원보다 북쪽 도로변에 신관 건물(현재 본관)을 두게 되었고 그 후로도 부족한 설비를 메우느라 조금씩 증축을 거듭했지요. 


당시의 모습을 보면, 도로변에 출입구가 있고 캐노피로 멋스럽게 장식했음은 물론 자동차로 현관까지 올 수 있도록 오르막 도로도 만들었습니다. 출입구의 캐노피는 1984년 도로가 확장되면서 잘려나가고 화강석 테두리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1973년에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1981년에 9층짜리 병동이 신축되어 병원은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병원은 철도국의 이름이 바뀌면서 그 이름이 계속 변화했습니다. 미군정 시절 운수부였을 때는 운수병원으로, 후에 교통부가 되었을 때는 교통병원으로, 철도국이 교통부에서 분리되면서 서울철도병원으로, 다시 변화를 꾀하느라 국립병원으로 개칭되었고 이윽고 1984년에 중앙대학교가 위탁운영하면서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이 되었습니다. 


















<기록화보고서에 실린 평면도 신축당시의 평면도






붉은 벽돌 사이로 하얀색 화강석 라인이 사라진 캐노피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원래 도로변에 있던 출입구가 측면 구석에 옹색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건물의 왼쪽 편에 신축된 병동 건물이 거대하게 남아있습니다. 

병동 건물도 본관 건물도 방치된 채로 문닫혀 있습니다. 코레일 재산이겠지요. 

코레일은 용산 개발의 꿈에 부풀었다가 주저앉았지요. 이 건물은 어떻게 될까요? 











11월 말, 용산지역을 답사하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이 건물을 다시 한번 들렀습니다. 건물의 역사와 현황을 이야기하면서, 이 건물이 주변 관사들과 긴밀했던 예전을 소환해볼 수 있었습니다. 

답사 참가자 중 한 분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중앙대 병원이던 시절, 이곳에서 자신의 딸이 태어났다고요. 병원이 문을 닫아버린 지금, 딸이 태어난 곳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이지요. 


건물이 없다면 기억도 자꾸 지워지는 걸까요? 

아직은 멀쩡한 건물을 현명하게 다시 사용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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