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아 기념관
근대건축물은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유산에 불과할까? 과연 일본식 주택이나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관공서가 전부일까? 근대시기는 유럽 각국의 다채로운 외래 건축이 자유롭게 펼쳐지던 건축의 각축장이었다. 상사나 금융 등 상업건축도 화려하게 등장했고 외교와 무역을 주름잡던 굵직한 인물들이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화려하게 지은 주택이나 별장도 있다. 선교사들이 주도해서 지은 교회(성당)와 사택, 병원과 학교도 빼놓을 수 없다. 선교사들이 행했던 종교, 의료, 교육 활동은 우리 사회의 깊은 뿌리를 형성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기에 건축적 의미 외에도 역사적 사회적 의미도 가진다.
백년 전 종교적 사명으로 건너온 선교사들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청주, 광주, 순천, 대구는 선교사들이 형성했던 마을이 지금도 도시 속에 완전히 동화된 채로 존재한다. 당시의 풍경을 간직한 건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마을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도 옛 선교사마을은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고즈넉한 길 따라 아름다운 옛 건물을 구경하면서 그 시절을 기웃거리는 일이 진정 ‘근대건축산책’ 아닐까?
포사이드 기념관
민노아 기념관
청주 선교사마을을 찾아 탑동 일신여고를 산책했던 날도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주말 오후였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를 거닐면서 보물찾기를 하듯 옛 건물을 찾아보았다. 학교와 강당, 운동장, 뒤뜰 사이에 조심스럽게 자리 잡은 기와지붕 건물들이 보이자 설렘이 시작되었다. 붉은 벽돌과 근사한 한옥기와지붕이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축물이었다. 번듯한 이층 벽돌 건물은 청주 최초의 현대식 병원으로 불리는 소민병원이며, 그 가까이에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이 휴식하고 머물던 ‘노두의(로위)기념관’이 있다. 일신여중 건물과 강당 사이 언덕에 선교사주택인 ‘포사이드기념관’과 ‘민노아(밀러)기념관’(후에 유치원으로 사용되었다)이 있었다. 학교 바깥에 있는 ‘소열도(솔타우)기념관’과 ‘부례선성경학교’는 개인소유의 건물이므로 자유롭게 관람하기 어렵다. 건물을 모아 보니 마을의 형태가 대략 짐작된다. 언덕 가장 높은 쪽에 민노아 목사의 집(민노아기념관)과 독신 선교사들이 머물던 포사이드기념관이 있고, 서측에 병원과 사택이, 동측에 성경학교가 있는 구조다. 포사이드기념관 앞에는 밀러(민노아) 목사의 묘소와 선교기념비가 있다.
포사이드 기념관
밀러 목사가 이끄는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이 청주에 정착한 것은 1900년대 초의 일이다. 청주 남문 근처 장터 부근에 교회를 세운 그들은 시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탑동을 거처로 삼아 살고 배우고 나누는 집을 지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1906년에 지어진 포사이드기념관이다. 붉은 벽돌로 단정하게 쌓은 단층 건물에 묵직하면서도 끝이 사뿐한 전통기와지붕을 올려 서로 이질적인 듯 보이지만 한편 교묘하게 어울린다.
내부는 완전한 서양식이다. 대청마루가 중심에 있는 한옥과 달리 포치가 있는 현관으로 들어서면 중앙홀이나 계단을 따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단층처럼 보이지만 지하실과 지붕층을 둔 엄연한 2층 건물이다. 온돌 대신 스팀 난방과 벽난로가 설치되고 실내 화장실을 두었다. 뒤에 지어진 건물은 분명한 이층과 삼층 구조를 취하며 서양식 구조가 뚜렷해진다. 한양절충식이라고 불리는 이들 건물은 서양식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한옥을 닮은 외관으로 당시 사람들이 서양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덜고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소민병원
무엇이 그들이 이 먼 곳까지 오게 했을까? 선교사마을을 산책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해본다. 밀러, 로위, 제이슨 퍼디라는 이름 대신, 민노아, 노두의, 부례선과 같은 낯선 이름으로 불리며 민중 속으로 들어섰던 삶, 고난과 행복을 함께 맞이하며 소박한 공동체를 꾸몄던 그들의 삶은 종교를 뛰어넘어 존재의 희망과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파도처럼 흘러다니는 디아스포라의 운명. 일상의 작은 장면조차도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 집이라면, 이 집은 먼 곳의 풍경을 간직한 채로 용기있는 여행을 멈추지 않던 한 인간의 내면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노두의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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