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광양, 섬진강 가의 


작은 목조주택 앞에 섰다. 집을 찾아가는 길은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강가는 한적한 마을이었고 드문드문 횟집들이 보였다. 완만한 곡선의 길을 따라 차를 몰고 천천히 두리번 거렸다. 물은 천천히 흘러서 바다로 향하고 있다. 약간 서쪽으로 기운 햇살이 금세 저물것만 같은 시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봄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추운 3월의 첫째날이었다. 



이윽고 집을 찾았다. 집 앞에 놓은 문화재청의 표식이 우리를 불렀다. 집은 비어있었고, 동네는 조용했다. 빈 집이 등록문화재가 되면서 윤동주 사건을 기록하고 보여주는 장소로 바뀌었다. 문이 닫혀있어서 창밖에서 망연히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저기쯤 원고가 보존되어있던 마루인가 보다, 저기가 사람들이 드나들던 문이고 안쪽이 살림집인가 보다, 서로 중얼거렸다. 



이 집은 시인의 문우인 정병욱의 본가다. 그는 윤동주가 정서한 육필원고를 받아든 두번째 인물이다. 세 권의 원고뭉치는 난리 중에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문우의 집에 한권이 보관되어 있었다. 윤동주의 시집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결정적 원고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일본으로 떠나고 정병욱은 징병으로 전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원고를 소중히 간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는 공출로 쑥대밭이 되는 날이 많았지만, 그 어머니는 아들이 맡기고 간 문서들을 귀하게 숨겼다. 사실 그 어머니는 원고가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다. 전장으로 떠난 아들이 유언처럼 간곡히 부탁한 것이라, 그 마음이 서러워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꼭꼭 숨겨둔 것일게다.



그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을 때, 보자기에 쌓여 마루널 아래에 숨겨져있던 원고도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시인의 행적을, 시인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찾아헤매는 시인의 동생에게 전달되었다.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던 시들은 이윽고 출간되어 수십년간 수많은 청년들의 말 속에서 숨쉬고 살았다. 












예전 사진에는 


나무집 바로 앞으로 강물이 흐른다. 지금은 넓은 도로가 생겨나 물이 좀더 멀리 있다.



아쉬운 마음에 두리번거리다가 옆쪽 임시대문을 밀어보니 그예 슥,하고 열린다. 집은 커다란 창고가 딸린 'ㄱ'자 형이고 도로변에 상점용도의 건물이 붙어있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되었을까? 집은 그들이 떠난 그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시간이 딱, 멎어버린 옛집. 우리는 이런 집들을 많이 보아왔다. 



유리문을 열고 상점쪽으로 들어가본다. 무엇을 팔던 가겟집일까? 



집을 설명하는 말중에 양조장 건축이라는 단어가 언뜻 보인다. 그렇다면 커다란 창고는 술도가였던 것일까? 쉽게 술을 제조하지 못했을 텐데, 어떤 일들을 했을까? 이 창고는 원래부터 있던 것일까? 후에 증축된 걸까?

빈 집은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고서 시간의 한 단면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시간의 단면 속으로 들어가야 옳다. 















원고가 숨겨져있던 곳은 


마루널 아래다. 마루판자를 두 개 정도 빼면 그 속에 물건을 숨길만한 공간이 어둡게 보인다. 공출당하지 않으려고 소중한 물건, 일용할 양식들을 이곳에 넣어두었을 것이다. 원고뭉치도 그 틈에 숨겨졌을 것이다. 



정병욱에게는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조선어가 폐지된 후 학교를 다녔던 여동생은 한글을 읽지 못했다. 원고 뭉치를 들여다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글자가 한글이라는 것은 알았을까? 한글로 적힌 글자를 읽지 못했을 때 그녀는 조금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언어가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체제를. 아니면 그 글자가 뭔가 운명적인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한글로 씌여진 시.라는 것을 몰랐던 그 소녀는, 

훗날 시인의 동생과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었다.




바다로 향하는 섬진강 끝자락의 물길이 유유히 흐른다. 시간은 그렇게 끊이지 않으며 비통한 죽음 앞에서 느끼는 애잔한 감정 위에 회복과 기념과 기록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가 자라고, 그들의 아이가 또 자라서 상처를 덮는다. 나는 '회복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사람들의 삶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미래가 찾아오는 한 우리는 회복할 수 있다. 











육필원고는 이러한 


모양새였다. 원고지를 반으로 접어 오른편에서 묶으면 앞뒤로 마치 책처럼 읽을 수 있게 제본된다. 글자를 몰랐던 소녀와 달리, 나는 글자 한자 한자가 모여서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강처럼 흐르는 것을 보았다. 나는 회복하는 만큼 해결해야할 숙제들이 우리 세대에게 남겨진 것을 또 보았다. 식민지 청년의 비애와 죄의식도 고스란히 60년이 지난 지금 시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전해진다. 시대의 빈곤도, 역사의 요철도 60년을 건너뛰어 우리에게로 왔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저 덮어온 한 덩어리의 역사. 



그것이 자꾸 보인다. 시를 읽으니,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가 배우지 않았던, 어두운 역사가 보인다. 이 시대에 시인이 필요한 이유가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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