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은 베른하르트 슐링크를 만난 해로 기억된다.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가 독자들과 만나는 작은 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 《귀향》 등 아름다운 한편 문제의식으로 가득한 이 소설들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책 두 권을 들고 그의 육성을 들으러 갔다. 일흔을 훌쩍 넘은 그는 여전히 팽팽한 문제의식으로 가득했다. 이번이 첫 방문인데, 마지막 방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유머와 여유를 보여주었다. 


슐링크의 방문으로 박경리 문학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슐링크 이전에는 최인훈,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메릴린 로빈슨이 이 상을 수상했다. 이해 불가한 역사의 단면들을 질문하고 되새기는 작품을 써온 슐링크가 선정된 것을 보니, 이 문학상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2015년 수상자는 아모스 오즈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복잡한 역사 지형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며 공존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소설가다. 


박경리와 베른하르트 슐링크, 아모스 오즈… 닮은 듯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역사의 지형 속에 휘말린 개인의 삶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깊이 바라보는 사람들. 역사를 다루는 소설가란 그런 존재다. 상처를 쓰다듬는 존재들이다. 


통영에서 인천으로, 전쟁 직후 서울로, 다시 원주로. 박경리라는 인물은 늘 예상치 못한 도시에 삶을 부려놓았다. 도시들은 선생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각 도시에서 보낸 삶을 따라 선생의 인생을 몇 개의 장면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제1막의 시작은 통영이다. 유년시절의 좋고 나쁜 것들이 풍부했던 도시다. 신비롭고 비밀스런 바닷가 마을의 풍문들은 짠내 나는 언어와 함께 박경리 소설의 근간을 이룬다. 어머니를 버리고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소녀의 마음에 날카로움을 심어주었다. 금이(박경리의 본명)는 말을 줄였고 책에서 위안을 찾았다. 


제2막은 인천. 신혼의 달콤함과 평온함이 가득했던 시절이다. 남편의 부임을 따라 낯설지만 바다가 가까운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인천에는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헌책들이 수시로 쏟아져 들어왔고, 이 책들을 궤짝으로 사들여 읽으며 딸과 아들, 두 아이를 키웠다. 선생은 이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일본 유학파인 남편은 아내가 좀 더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수도사범학교에서 수학하고 황해도 해주에서 잠시 교직을 맡는가 했으나, 곧 전쟁이 터지고 남편이 행방불명된다. 2막의 마지막 장면은 강한 여운을 남기며 앞날을 예고한다. 




《토지》가 시작된 곳, 정릉집 

제3막은 서울에서 이어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 직후 혼란한 시절을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헤쳐 온 삶을 나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금이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어린 아들이 병을 치료하던 도중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것이다. 운명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울분. 금이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김동리의 추천으로 소설가로 등단한다. 그 후 십수 년간 신문과 잡지에 연재하며 수십 편의 장편, 단편소설을 써냈다. 그러다 1969년, 그 모든 열정을 하나의 이야기에 쏟아붓기로 결심한다. 길고긴 역사소설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토지》의 시작이다.







선생이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한 곳은 정릉의 오래된 집에서다. 나는 이따금 이 집 앞을 서성이곤 한다. 서울시는 이 집을 미래유산으로 매입하기를 원하지만 소유자와 원만히 협의되지 못한 상태다. 한편 정릉집은 유신정부로부터 사찰의 대상이 되었던 곳으로, 선생의 저항과 비판의 삶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집에 서면, 암울했던 시절을 오로지 글 쓰는 일로 이겨내려고 했던 작가가 떠오른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져야 하는가. 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토지》의 서문에 적힌 이 글은 언제 읽어도 마음에 사무친다. 하나의 이야기를 26년간 쓰게 될 줄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리라. 글 감옥 속에서 매일같이 연자방아를 돌리듯 살아온 삶이었다. 거대한 세계를 구축하면서 가장 깊은 사유의 시대를 살았고, 그것은 작가에게 고통만큼의 희열을 주었을 것이다. 50년에 걸친 3대의 이야기에는 등장인물만 해도 700여 명이 넘는다. 민초의 삶은 매일 방영되는 드라마처럼 생생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남쪽 끝의 사투리와 북쪽 끝의 사투리가 뒤섞이고 남쪽의 아지랑이 피는 풍경과 북쪽의 강물이 꽝꽝 얼어붙은 풍경이 겹친다. 수많은 민초들은 소설가의 분신이다. 용이에서 월선으로, 서희에서 길상으로, 우관선사에서 윤보로, 단 한 번만 등장하는 노동자와 농사꾼과 장돌뱅이의 입에서도 작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원주,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곳 

완독을 목표로 《토지》 읽기를 시작하고 몇 달이 흘렀다. 대하소설의 중간 정도에 이르자 선생 곁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다. 박경리 선생을 기념하는 장소들이라면 통영, 원주, 하동 등 여러 곳에 있고,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옛집도 있다. 정릉집이 기념관으로 바뀐다면 좋겠지만,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곳을 찾는다면 원주 옛집이 좋으리라. 시간이 허락한다면 원주 흥업면에 있는 토지문화관도 들러볼 수 있다. 《토지》 집필이 끝난 후 펜을 놓은 대신 호미를 든 선생이 농작물을 키우며 글을 쓰러 온 작가들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주던 곳이다. 토지문화관은 글 쓰고 예술 하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집필실이다.






단구동에 자리 잡은 옛집 주변으로 너른 공원이 꾸며졌다. 이름 하여 ‘박경리문학공원’이다. 선생의 삶과 저서를 살펴볼 수 있는 ‘문학의 집’도 곁에 세워졌다.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 관엽식물과 침엽수들이 노랗게 빛바랜 겨울 정원을 선명하게 채웠다. 정원 중간에 너른 바위에는 앉아 있는 선생의 모습과 애교를 부리는 듯한 고양이 동상이 함께 있다. 선생은 160센티미터를 조금 넘는 키에 자그마한 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직접 땅을 일구고 미싱을 돌려 옷을 만들던 선생이 큰 손을 가졌으리라 믿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작가의 몸은 실재하는 것보다 훨씬 큰가 보다. 


옛집 안으로 들어가 본다. 사랑방에 깔린 바닥지며 벽지, 주방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십여 년 전의 예스런 분위기를 한껏 풍긴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방은 향을 피울 만한 사물이 전혀 없었지만 정갈한 향내가 나는 것 같다. 묵직한 탁자에 앉아 사전과 책을 들추던 집필실, 책이 무너질 만큼 꽂히고 쌓여 있던 서가, 손님에게 내주었던 건넌방, 주방과 거실. 넉넉한 공간에 겨울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안방과 건넌방에는 창을 통과한 따뜻한 볕이 은근한 그림자를 만들며 바닥을 데운다. 


앉은뱅이 탁자 위에 토지 초판본이 놓여 있다. 꾹꾹 눌러 찍었을 인쇄본은 작가가 온몸으로 부딪혀 쓴 글자들만큼 식자공의 손길이 들어갔을 테다. 한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길고 지난한 세월이 내게도 훅 밀려든다. 시간이란, 시간이란! 







박경리 인생의 제4막은 원주에서 시작된다. ‘근원이 되는 곳’이라는 이름이 선생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토지 3부를 마무리하고 삶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1980년부터 원주의 삶이 시작된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이 구속되자 시댁으로 들어간 딸과 손주를 곁에서 돌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2층짜리 양옥집 앞에는 칠백 평가량의 텃밭이 있어 손수 무언가를 지어먹기 좋았다. 단단하고 넓고 환하고 따뜻하기란 정릉집에 비할 수 없었으리라. 선생은 손주들이 노는 모습을 보려고 거실 창 앞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1994년에 이 집에서 《토지》의 긴 여정이 모두 끝난다. 


폭풍 같은 세월이 잠잠해질 때 인간은 어떤 마음을 느낄까? 이 집에서 모든 것이 지나간 후의 담담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저항과 고통과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이곳에서 느낀다. 아주 오랫동안 싸운 후에야 깊은 깨달음과 긴 안식이 찾아온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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