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다들 살고 계신가요? 저는 분명 어렸을 적엔 마당있는 단층집에서 살았는데,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파트로 옮겨왔습니다. 지금은 베드타운으로 형성된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의 고층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다들 아파트에 삽니다. 년수와 평수가 다를 뿐, 비슷비슷한 구조의 집입니다. 어쩌다 보니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전략적으로, 누군가는 늘 그래왔다는 듯,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리며 아파트를 보금자리로 살아갑니다.
앞으로는 예술가나 문인들의 생가나 아틀리에를 찾아갈 때, 복잡한 골목을 통하지 않고, 00 아파트 0동 0호로 가게 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므로 집보다는 다른 장소, 이를테면 세컨드하우스나 아틀리에, 작업실과 같은 개성있고 은밀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질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파트 인생>이라는 전시는 서울의 아파트 변천사를 꽤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살게 된 아파트에서의 인생이 국가정책의 변화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 문화, 가전제품 등 산업 등 모든 것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도시에 침투한 것이 1960년대라고 하니, 50여년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아파트라는 공간에 맞춰서 성형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이 50년 전 계획된 아파트에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강풀의 만화 <아파트>가 꽤 으스스한 호러물이었다고 기억되는데, <아파트 인생>은 전시회로 울렸다 웃겼다 눈을 번쩍 뜨게 했다 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당신, 꼭 한번 가서 관람해보기를 권합니다.
서울의 아파트 개발정책에서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다양한 아파트들, 투기열풍과 아파트 디자인, 재개발과 철거.....인생의 여러 고비처럼 전시관을 넘나들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장면들을 발견했습니다.
1. 아파트 분양 추첨
요즘도 아파트 분양 추첨할 때 경찰관이 참여하여 엄정하게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눈을 가리고 해당 관계자가 번호를 뽑거나 분양대기자들이 추첨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동과 호수에도 민감한 만큼 그 방법이 엄정하지 않다면 곤란하겠지요. 예전에는 손톱만한 은행씨앗에 번호를 적어 그것을 추첨하는 데 썼다고 합니다. 은행이라니요. 처음엔 어이없게 생각되었지만, 합리적인 방법을 찾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추첨방식에 의문이 없는지도 궁금해지네요.
2.초기 아파트 디자인
1961년 지어진 마포아파트
금화아파트
단순하지만 디자인 요소가 분명한 아파트.
콘크리트로 장식없이 만든 미니멀한 디자인의 놀이터.
아파트 단지 디자인이 꽤 멋집니다.1960-70년대 우리는 아파트를 짓는 기술 수준이 꽤 높았다고 합니다.
1961년에 등장한 마포아파트는 단지 계획이 최초로 실시된 것으로 의미가 높은 건물입니다. Y형 아파트가 당당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이 아파트는 대한주택공사에서 추진했고 임대가 아닌 분양 방식으로 제안하여 아파트 문화의 미래를 열어간 사례라고 합니다. 단지 안에는 공원, 녹지, 운동장이 있었고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이 아파트가 초기에는 큰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아파트는 서구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인식되면서 선망의 집으로 자리바꿈을 했고, 영화에서도 아파트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아파트에 살던 친구가 부러웠던 때는 놀이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놀이터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였습니다. 작은 단독주택에 살던 나는 다리 건너 다른 동네의 아파트 안의 놀이터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네와 뺑뺑이를 타면서 보았던 하늘은 높고 크고 파랬지요. 재미있고 신나던 시간을 들라면 어린 시절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요즘 아이들은 아파트 놀이터에 모래가 깔려있었나, 고무블럭이 깔려있었나를 가지고 세대차이를 논한다고 합니다. 마당이란 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아파트 키드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변화에 따라 자신의 경험을 차별화하는 모양입니다.
3. 주택복권
어렸을 적 주말마다 주택복권 맞춰보는 게 정해진 일과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꽝이지만 추첨시간에는 두근거리며 숫자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 때 주택복권은 내집에 대한 희망과 일주일에 한번 느끼는 스릴, 모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도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로또 복권을 사고 추첨시간을 기다립니다.
내 집갖기가 우리 부모 세대들의 목표였습니다. 부모의 삶을 돌이켜보면, 열심히 일하고 회사가 성장하고, 자식들이 커가면서 집의 규모를 조금씩 늘리고, 소박하고 작은 가구에서 화려하고 큰 가구를 들여놓는 등,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상승하는 것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부모가 얻은 만큼의 만족도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의 2,30대에게 세상은 부모가 물려준 것으로 사는 것이 되어버렸지요.
얼마전 트위터에서 이런 농담을 보았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말하길, "너도 커서 꼭 너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라고 했는데, 나 닮은 딸은 지금 엄마한테 가서 자라고 있다." 부모의 손길이 없이는 경제적 자립도, 육아도, 학업도 불가능한 시대인데다, 우리는 이 복권에 기대를 걸만큼 꿈이 있지도 않습니다.
4. 아파트 인테리어
아파트가 한창 보급되면서 집꾸미기에 관심이 집중되어 인테리어잡지들이 속속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하지요. 초창기 아파트는 아궁이와 창호지가 붙은 여닫이 문이 있는 구조를 취했다가 점차 입식 생활, 간편한 생활에 적합한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1959년에 세워진 종암아파트는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었고 70년대에 싱크대가 부엌에 들어왔습니다.
가구와 가전제품의 종류와 크기도 아파트라는 집의 구조, 평형과 긴밀히 연결되게 됩니다. 예전에 사용했던 가전과 가구들은 지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지요. 아파트 평형을 넓혀가며 식구수도 늘고 가구와 가전도 점점 커지고 그런 흐름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1인가구,2인가구도 많아서 큰 평형의 집도, 큰 가전도 필요없는 추세로 가게 되는데도 가전제품의 크기는 줄어들 줄을 모릅니다. 일단 커진 것은 줄어들기가 어려운 법이죠. 생활공간도 대단지 아파트타운이 되다보니, 자가용과 대형 마트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쇼핑과 택배가 늘어났습니다. 도시의 구조, 건축의 형태, 산업 등이 연쇄적으로 변화합니다. 아파트가 만든 변화들은 사회전반으로 퍼져나가고 그렇게 고착화된 구조들로 인해 아파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5.광주 대단지
철거와 이주 문제는, 대단지 개발을 할때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등장합니다. 구호와 현수막과 망가진 집들로 도시의 폐허가 생겨날 때 한쪽에서는 그 폐허 위에 태어날 황금빛 초고층 아파트를 꿈꿉니다.
전쟁 전후 지어진 판잣집, 재건시대에 부족한 물자로 엉성하게 지어진 불량주택, 도시 빈민들의 무허가 거처 등은 도시의 골칫거리였습니다. 특히나 부족한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택지개발과 아파트 단지 계획을 1960년대부터 시작했는데, 이때 도심부를 장악하고 있던 빈민촌이나 불량주택지들은 철거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9년부터 철거민들은 단계적으로 경기도 광주의 이주촌으로 옮겨갔습니다. 20여평의 땅을 불하받았으나 도로도 상하수도도 없는 무방비의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쓰레기차에 실려서 이주했고 겨우 블록집이나 천막집이 집으로 주어졌습니다. 먹고살 방법도 없었습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해달라고 집단 시위를 벌입니다. 광주대단지는 후에 성남시로 이어집니다.
광주대단지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창신동> 전시에서였습니다. 철거민의 대단지 이주라는 희대의 사건이 왠지 생경하게 느껴져 오랫동안 되뇌이곤 했습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진과 내용이 이번 <아파트 인생>전시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파트가 주거문화의 부분을 넘어서 경제적, 사회적인, 정치적인 부분과도 긴밀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건 우리 삶이, 우리 스스로는 자립적이고 자존적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사실은 이 사회에 깊이 존속되어 있고 사회 구조를 바꾸는 힘,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틀을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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