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한 디자이너와 만나서 타이포그래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있는데, 한글 글꼴개발자이며 안상수체의 장본인이 안상수선생이 이상체를 디자인했다는 겁니다. 날개의 작가인 이상의 천재성에 매료되어 그에게 헌정하는 서체를 개발해 '이상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요.   


이상의 시에서 착안되었다는 글꼴을 보니, 글자가 초성, 중성, 종성의 총합이 아니라, 모음과 자음의 음가 하나하나가 의미와 형태를 가진 존재인것 같습니다. 무수한 의미의 총합, 무수한 형태의 총합이 한편의 시이며, 한마디의 말이 되는 것이지요. 단단한 의미 덩어리는 당돌하고 당당합니다. 태연자약하고 방약무인합니다. 이상이 시로서 전달하려던 행동과 의미들이 지금 이 글꼴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 서체로 "오감도"나 "날개"를 읽으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봉별기를 읽으면 어떨까?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

라던가,

"날자, 날자, 날자꾸나,"

라던가,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금홍의 노랫소리 같은 것을, 이상체로 읽으면 더 슬프고 더 우습고 더 기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촌의 어느 길목에 이상의 집이 있습니다.몇달간의 공사를 끝내고 새로 문을 연 이상의 집에는 집의 얼굴이 되는 도로변 정면 입구에 이상체로 적힌 "이상의 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자로 이상의 시가 적혀있다면 글꼴의 느낌과 이상이라는 의미가 결합하여 상승효과를 만들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의 시는 공간 내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문을 연 '이상의 집'은 이상이라는 기이한 인물의 예술가적 기질을 좀더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기생 금홍과 제비다방을 차린 사연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도안을 만들던 시각예술가로서의 이상의 자료를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경성고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로 일하면서 탐독했던 <조선과건축>의 표지 도안을 다양하게 그렸고, 오감도를 연재할 무렵, 친구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지요. 이상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여서, 나이많은 친구이자 화가인 구본웅과도 곧잘 어울려 그림을 그렸습니다. 구본웅이 그린 홀쭉하고 수척한 얼굴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우인의 초상>은 바로 친구 이상을 그린 것이라고 하지요. 이상의 집에서는 문학으로서만 존재했던 이상이라는 인물을 실제하는 어떤 존재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가 그린 그림, 그의 사진, 그런 것들이 미약하나마, 요절한 예술가를 더듬게 해줍니다. 


그런 한편, 이상의 초현실적인 시들은 당시 사람들은 물론 21세기 인간들까지도 혼란하게 만듭니다. 저돌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 삶이 소설이었던 문제적 인물. 그래서 가장 권위있고 대중적인 문학상이 '이상'이라는 이름을 품고 있는 것 아닐지요. 


저는 박태원의 만년필이 그려진 이상의 삽화 엽서를 하나 샀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친구는 역시나 타이포그래피를 재미있게 응용한 도안 엽서를 구입하더군요. 
















이상의 집은 그동안 분명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집은 여러가지 사연이 많았습니다. 154-10번지는 이상의 백부의 집이 있었던 곳입니다. 필지는 훨씬 컸고 집도 그만큼 넓었지요.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에게서 태어난 첫째 아들 김해경은,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갑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흔했지요. 어렸을 적부터 모든 학창시절을 이 집에서 보내게 됩니다. 폐결핵에 걸려 총독부를 그만두고 백천으로 요양을 가면서 금홍을 알게 되고 이후 금홍과 청진동에 제비다방을 차리게 되어 집을 나가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 집은 양자로 입양된 후부터 금홍과 살림을 차리기 전까지 스무해를 살았던 곳이 됩니다. 스무해 동안 김해경은 엘리트 청년이었고, 그 스무해 이후부터는 이상이라는 이름의 기괴한 예술가로 살았습니다. 그 전환점은 무엇일까요? 


이상이라는 이름은 고등학교 졸업앨범에도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구보 박태원처럼 저널리스트다운 에세이로 자신의 옛일을 꼬박꼬박 적어두었다면 모를까, 이상의 학창시절은 뻥 뚫린 구멍 같습니다. 



이상이 머물렀던 집이라 하여 문화재 지정예고에 이르렀으나, 검토한 결과 이 집은 백부가 가산을 처분한 후 필지가 나뉜 뒤에 생겨난 집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상 김해경은 이 집에서 기거한 사실이 없는 셈이지요. 문화재 지정은 취소되었고, 이 시설을 관리하는 아름지기 측에서는 한옥을 없앤 후 새로운 이상기념관을 지으려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한옥의 정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항의와 건의가 있었습니다. 의견을 조율하는 지난하고 답답한 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건물을 없애지 않고 이상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몇 달간의 공사가 끝난 후 새로 문을 연 이상의 집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우선, ㄱ자형 건물은 그대로 자리잡고 있지만 벽을 틀어내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고, 뒤쪽에 있던 한옥의 한부분은 불법 층축된 부분이라 하여 철거되었습니다. 한옥이 있던 자리에는 좁고 긴 하얀색의 공간이 투입되었습니다. 내부에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운 내부에 영상물이 흘러나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지붕 너머로 멀리 서촌의 곳곳이 내려다보입니다. 한옥의 원래 벽은 털어내고 투명한 유리를 끼워 모든 장소들이 겹쳐지고 투명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원래의 부재들을 최대한 쓰기 위해 추춧돌과 지지대를 곳곳에 썼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옛 재료와 새 재료가 적절히 섞여서 몹시도 모던한 느낌을 줍니다. 


옛집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공간이 가진 고즈넉함이나 자잘한 공간과 벽이 주는 느낌들은 없어졌습니다. 하얀색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두고 건축가는 '이상에게 헌정한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이상의 내면을 엿보는 것 외에는 다른 기능이 없습니다(일층부분은 화장실로 사용되긴 하지만요) 이상이 살았던 쪽방의 어두컴컴함, 좁은 계단이 만드는 분위기, 탁트인 외부와 만날 때의 통쾌함 등을 전달합니다. 


그러므로, 원래 집이었던 곳은 관람자들이 쉬었다 가거나 행사를 치르는 용도로 사용하고, 이상이라는 우리의 주인공을 위한 공간은 모던하지만 색채가 드러나지 않도록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한옥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던 이상을 위해서 가상의 공간, 제의적인 공간, 기념의 공간을 새로 투입한 것이지요. 













온통 유리로 둘러싼 건물은 길과 마을과 사람의 움직임이 서로 통과하고 반영합니다. 새로운 공간은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이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다채로운 행사들이, 재기발랄하고 기발한 생각들이 많이 오가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자와 테이블 구조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진 의자와 테이블이 마치 카페처럼 놓여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게 하는데, 이 구조에서 벗어나서 원형 테이블과 소파, 높낮이가 다른 스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기발한 디자인의 가구들, 다양하게 섞을 수 있는 책선반 등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의 구조뿐만 아니라, 가구의 컨셉도 관람자의 행동을 제한하고 또 유발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누군가도 서로 눈빛을 마주칠 수 있고 자유롭게 공간을 거닐 수 있으며, 또한 자유로운 발상의 예술문화행사들이 마구마구 벌어지는 재미난 공간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이상이라면 반듯하게 놓인 무난한 의자를 마구 흐트러놓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았을까요? 




납작하고 하얗고 작은 공간, 아이들 의자마냥 낮은 의자들이 놓였다던  다료 제비.

한면이 유리로 되어 지나가는 여인들의 종아리를 훔쳐볼 수 있엇다는 끽다점 제비. 


종로 귀퉁이에 조용히 앉았다 날아가버린 그 제비는 또 어디선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겠지요.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경험한 후, 작은 공간을 위안 삼아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도모하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들고 작지만 의미있게 소통하고 모여서 노래를 하고 시절을 수상히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모두 제비 다방의 후예들이 아닐까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