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부산에 살던 무렵인 듯하다. 버스를 타고 자갈치 시장을 지나오는데, 묘한 집들을 보았다. 연대가 상당히 거슬러올라가는 듯 보이는 목조가옥들이 희뿌옇게 먼지를 날리며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풍경이 스쳤다. 자갈치인듯 자갈치가 아닌 그곳은 대체 어디였을까? 나는 궁금해하면서도 낯선 기운에 발을 디디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희미한 안개를 타고서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산을 방문한 지난 달, 우연인듯 필연인듯 그 거리를 지나갔다. 가을이라 하기에 너무나 쾌청한 날씨 덕분에 예전에 보았던 그 희끄무레한 어둠은 떠올릴 새도 없었다. 그곳에서 홀린 듯 집을 구경했다. 원래 자갈치 시장이 있었던 자리가 이곳이라 했다. 적어도 192-30년대에는 생겨났을 법한 일본식 목조형 상가들이 지금껏 남아서 도열해있는 희안한 곳이었다. 언제부터 이곳이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부산의 가장 크고 유명한 이 어시장이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었을까? 어떤 활동들이 있었을까? 골목마다 수십년에서 길게는 거의 100년에 가까운 건물들이 자신의 시대를 먼지 아래 지우면서 생선을 파는 일에만 골몰해왔다. 지금은 공동어시장 센터에 주요상권을 내주고 건어물시장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길 끝에 옛 시대 어시장 건물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걸음을 재촉했다.
부산은 비린내가 내재된 도시다. 먼 곳에 오래 있다가 부산역에 내렸을 때 나는 들큰하고 짠 내음이 코속으로 빨려들어온다. 짠 내음과 비릿한 바다 냄새는 엄마 몸냄새처럼 익숙하고 유난스럽고 다정하고 안심을 주는 그런 것이다. 끈적이는 짠 맛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다에서 끌어올려진 생물들의 냄새인지, 그 바다에 몸의 일부를 비비고 사는 인간들의 냄새인지, 구분할 수 없다. 부산에 사는 한, 사람과 바다와 땅은 하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거대한 밀도의 물에 익숙해지고, 짜고 비린 냄새에 익숙해지고, 대책없이 새파란 하늘에 익숙해지고, 또 먼지 한오라기 남기지 않을 것처럼 시도때도 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부산이다.
지금 남포동 수협으로 바뀐 저 장소가 최초의 어시장 건물이라고 일행이 알려주었다. 부산시 수협의 전신인 부산어업조합의 자리란다. 어선이 실어온 물고기를 자갈밭 해안에 내다팔던 시장이 열렸다고 자갈치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러므로 남포동 수협 건물 앞이 모두 찰방찰방한 해안이었다는 이야기다. 복개된 해안 위에 서서 오래된 건물을 바라보았다. 바글바글 시작된 어시장은 지금 다대 공판장, 자갈치 공판장, 남포동 건어물 공판장 등 세 개의 공판장에서 2천억원이 넘는 위판고를 올린다. 명실공히 국내 최고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옛 건물을 구경하는데 솔솔 고소한 내음이 난다. 가을전어라고 하더니, 여간 꼬숩지가 않다. 이동하다가 일행 모두 멈추고 전어구이와 생탁으로 쉬어갔다. 한갓진 평일 오후에 전어구이집 주인이 대목 만났다. 뼈까지 모두 씹어먹어야 꼬순 맛을 잘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안씹히는 거지? 다급한 나머지 바짝 구워야 제맛인데, 좀 덜 구워졌던 것 같다. 냄새 흡입하고 살 발라먹으며 전어맛을 즐긴다. 그날의 기억 중에서 전어구이를 먹던 장면이 가장 선명하다. 건축 답사를 하더라도 별미 먹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영도다리가 다시 도개교로 바뀌었다. 요즘도 12시가 되면 다리를 번쩍 들어올린다. 예전에는 영도대교와 부산대교가 엄청 대단했던 것 같은데 광안대교니, 거가대교, 마창대교 등을 보다보니 이런 다리쯤이야 보잘것 없다. 그 바다에서 여전히 낚시를 이어가는 꾼들이 자리를 잡았다. 흥미롭게도 영도대교 근처에는 예부터 그자리에 있었다는 점집들이 영업중이다. 전쟁 때 최후의 피난처였던 부산은 전국 각지에서 쫒겨내려온 피란민들이 넘쳐났고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기 위해 바다의 끝 영도다리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눈물을 흘렸단다. 이것은 그런 바람이 불러일으킨 점집들이다. 지금은 드문드문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옛 시대를 흘려보낸 푸른 물결처럼, 이산의 마음도 추스러졌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탄생지가 아니던가, 다리 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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