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정원박물관 : 아사카노미야 저택
도쿄도 정원 박물관은 일왕가의 일원인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가 1933년에 지은 저택과 영지 내 거대한 정원에서 비롯되었다. 전후 저택 부지가 국가로 환수된 후에 총리관저로도 사용된 이곳은 1983년부터 박물관으로 공개되어 시민들은 물론 도쿄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이 저택은 1920~30년대 프랑스 파리를 휩쓴 아르데코 스타일을 도쿄에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도쿄건축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웅장함이나 화려함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모던한 외관을 지녔지만 현관을 통과하면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다가온다. 타일로 정교하게 장식된 바닥과 비상하는 여신을 섬세하게 세공한 유리조각으로 뒤덮인 벽에서 정교한 세공의 세계로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이윽고 우아한 식물 모티프가 기계미학과 만나 섬세한 패턴을 이루는 공간들! 정교한 비례와 절제된 형태의 장식들이 숨막힐 듯한 긴장감을 주는 공간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저택은 대형 홀과 응접실, 대식당, 소식당 등으로 이루어진 공적인 영역인 1층과 침실과 서재 등 사적인 영역인 2층, 바우하우스 풍 가구가 구비된 겨울온실이 있는 3층으로 구분되는데, 가구, 조명, 오브제, 벽화, 벽지, 그리고 경첩이나 라디에이터 가리개 같은 크고 작은 철물까지 세심하게 디자인되어 ‘이것이 바로 아르데코’라고 외치고 있었다.
박물관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건축물이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곳이었다. 건축과 실내 디자인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오디오 가이드와 도록으로 접할 수 있었다.(한국어 설명도 있다) 이 집을 디자인한 앙리 라팽과 르네 랄리크에 대한 이야기, 건물을 실제로 구현해냈던 궁내부 건축 집단에 대한 심도 깊은 설명은 건물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건축의 서사는 전시장과 카페, 그리고 다양한 상품들에서 훌륭하게 활용되었다. 좋은 건축을 보유하고서도 건축 이야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박물관들이 우리에게는 참 많지 않던가. 건축서사를 잘 활용한 좋은 장소를 알았다는 흡족함에 즐겁게 관람을 마쳤다.
옛 아사카노미야저택의 내부 모습 ( http://www.teien-art-museum.ne.jp)
그런데,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취향을 끝까지 밀어붙여 아름다운 저택을 완성한 아사카노미야 아스히코. 그가 궁금해졌다. 간단한 검색으로 많은 정보가 나왔다. 메이지천황의 자손인 야스히코는 일본육군 장교로서 군사학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예술적 취향이 높았던 그는 1925년 파리장식미술박람회에 참관하고서 아르데코에 푹 빠졌으며, 앙리 라팽과 르네 랄리크를 초빙하여 도쿄 저택의 설계를 의뢰하게 된다. 그저 예술애호가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군국주의자였고 1938년 난징대학살 때 일본군 지휘관이었다. 전쟁의 책임을 져야할 위치였으나 왕족이라는 이유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던 비굴한 역사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전력을 알게 되자 건축적 아름다움과 박물관의 경이로움만으로 이 건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것이다. 건축은 시대의 요구나 기술력, 건축가 혹은 건축주의 예술적 안목만으로 설명을 끝낼 수 없다. 건축에는 사람의 인생이 압축되어 있고, 그 인생의 의미와 공간의 가치는 서로 공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건축은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한때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의 집이라고 하더라도 후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면서 또다른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에게 많은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그러하듯이,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건축은 다양하게 확장된다.
삶의 복잡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질문의 해답이 건축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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