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란각은 오래 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던 곳이다. 일본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기생집이라고도 하고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이 드나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나 못가는 고급 요정이라는 설명은 이 집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 정란각이 이제 누구나 들어가서 내부를 구경하고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세월은 굳게 닫혔던 비밀의 문을 활짝 열었고 시대를 관통하는 건축물이라는 의미로 문화재 역할을 부여했다. 정란각의 새 이름은 ‘문화공간 수정’. 이름이 바뀌니 공간이 달리 보인다. 일본인 부호의 집에서 적산가옥, 요정을 거쳐 문화재가 된 이 집의 역사가 천천히 표백되어 말끔해진 느낌이다. 오롯이 역사를 이야기하는 건축물로 역할이 바뀐 것이다.
요정이 문화재가 된다고 하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거대한 일본식 저택의 당당한 위용은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우리 역사가 아름다운 꽃길만 걸어온 것이 아니기에, 역사의 어두운 길만 걸어온 이 건물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다. 마치 세찬 풍파를 헤쳐온 한 인간처럼 느껴진다. 먼 계절을 돌아 이제 투명한 눈빛으로 후손들 앞에 선 한 노인의 인생처럼.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1943년 6월 12일, 수정동 한복판에서 나는 태어났지.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았어. 지나온 시절을 돌아볼 틈도 없었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정란각이 있는 초량 일대는 부산근대사의 중요한 장면을 품은 지역이다. 한산한 포구였던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왜관이 설치된 곳이었고, 개항 직후엔 일본조계지가 열려 돈과 기회를 잡으려는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산을 헐고 바다를 메운 그 자리에는 철도와 항만이 생겨나고 관공서와 상가, 저택들이 등장했다. 수정동 일대는 옛 왜관지역이라 ‘고관’ 혹은 ‘구관’으로 불렸다.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사지였으므로 대지주와 자본가, 권력가들의 대저택들이 들어서기에 맞춤한 곳이었다.
수정동 1010번지의 옛 토지대장은 이 집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산 상권과 자본을 휘어잡은 주요한 인물들이 소유해오다가 1939년 다마다 미노루라는 재력가가 매입하여 정란각이 되는 저택을 지었다. 철도관사가 자리잡았던 곳이기도 해서 이 집이 철도청장의 관사라는 소문도 무성했으나 문화재 등록을 위한 조사를 하던 중 상량판을 발견하면서 집의 처음이 선명하게 밝혀졌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 보자. 대문부터 높다랗게 세워져 재력가의 저택다운 면모를 보인다. 본채인 이층 목조 건물은 양식 건물이 어색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데 일식과 양식을 절충한 모습이다. 그 사이에는 탐스런 꽃나무들로 조성된 일본식 정원이 있다. 1층과 2층은 일본식 툇마루인 엔가와 바깥으로 유리미서기문이 가지런히 닫힌 상태이며 유리문 너머로 살짝 뒤로 물러선 방들이 넌지시 보인다. 겹을 이룬 공간이 주는 비밀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집의 구조와 규모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내부는 중복도와 내부 계단으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중층으로 연결된 부속채로 이리저리 이어지는 구조인데다 요정으로 활용하면서 증개축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손님이 다니는 공간과 직원이 다니는 공간을 분리하고, 손님들끼리도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답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구조를 선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문화재 조사를 위한 기록화보고서는 처음 이 주택을 지을 당시에도 일반적인 주거 개념이 아니라 연회나 회합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컸으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은 2층 다다미방이다. 벚꽃과 독특한 과실 무늬를 새겨넣은 목조장식들과 도코노마 같은 일본식 장식 공간이 돋보이게 꾸며진 이 방은 방문을 모두 걷어내면 수십 명의 권력자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
다마다 미노루는 이 집을 고작 3년도 소유하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그 뒤 미군정청 장교 숙사로 사용되었고 개인에게 불하된 이후로 요정과 요릿집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어찌 부와 권력 이면의 추함과 서늘함을 전부 상상할 수 있을까? 개항기 일본인들이 성공을 좇아 낯선 대륙에 발을 디뎠다가 결국 패망인의 운명에 처했고, 정치를 제 맘대로 주무르던 지난 시대의 권력자들이 결국 역사의 그림자로 사라져갔으나, 건물은 남아 노쇠한 목소리로 시대를 이야기한다.
정란각을 방문한다면 자원봉사로 해설을 하는 어르신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저택의 아름다움과 역사의 복잡함을 균형 있게 전달할 뿐 아니라, 일본풍을 추종하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재로서 저택의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겐 이런 이야기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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