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청 앞 해안동 일대에는 오래돈 붉은 창고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래전, 인천항이 개항장이었을 때, 배로 드나드는 물건들을 보관하던 창고였지요. 지금도 그 창고들은 남아서, 창고나 가내수공업 공장으로 쓰거나 비어있거나 심지어 나이트클럽이나 카페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개항기의 문화재 건물과 1930~40년대의 창고들과 인근 주택, 새로운 건축물 등 13개 동의 인천아트 플랫폼은 인천 해안동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지요. 예술인 마을이자 스트리트 아트의 현장인 이 장소는 오래된 조계지의 역사와 개항장의 환영, 그리고 지금의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새로운 도시 풍경의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인천 아트 플랫폼 바로 옆에 두 개의 창고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바로 얼마전 9월 27일에 한국 근대문학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저는 오래된 창고 건물을 꽤 좋아합니다. 허공에 담긴 쓸쓸하고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는 공간감도 좋고, 낡았지만 기능적으로는 전혀 문제 없이 단단한 재료가 주는 그늘도 참 아름답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건물의 형태도 그러하고, 무엇으로도 쓰일 수 있는 투명한 장소라는 점에서 건물의 미래를 상상하게 됩니다. 어떤 것들이 이 공간을 채울까? 어떤 인물, 어떤 냄새, 어떤 빛이 이 장소들을 빛낼까? 기대하게 되는 거죠.   


기대를 갖고서 골목을 따라 걸어갑니다. 언덕의 등고선은 촘촘하여 골목은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늘 차이나타운과 옛 개항장을 걸을 때면 천천히 느긋하게 걷게 됩니다. 그것만으로, 점차 변모되고 새로 생겨나 덧붙여지고 수많은 현수막이 건물을 덮고 있어도 이 장소를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그림들은 그늘진 사진전을 소개하는 포스터여도 좋습니다. 

그 골목에는 집집마다 유난히 '복(福)'이라는 글자가 대문에 많이들 붙어있습니다. 
















그 골목 어귀에, 수년 전 처음 보았을 때도 빈집이었던 그 집이 지금도 빈 채로 담쟁이에 뒤덮여 있습니다. 담쟁이는 빈 집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곤 하지요. 숨막힐 듯 건물을 뒤덮고는, 음모자처럼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이파리가 모두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지요. 참으로 오랫동안 건물은 봄여름이면 푸른 담쟁이로 덮였다가, 가을 겨울이면 남김없이 털어내고 빈 몸으로 서있곤 했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슬슬 눈에 보일 즈음, 대불호텔 터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대불호텔의 유구를 발견하여 터를 정리해두었더군요. 건물의 복도와 벽의 흔적인가 봅니다. 매년 우리가 살아가는 대지의 높이가 몇 센티미터씩 높아진다고 하더군요. 땅 속에는 깊이에 따라 과거의 흔적이 나온다고 하니, 삶이 좀 놀랍게 느껴집니다. 과거의 삶 위에 적층된 현재의 삶. 과거의 삶이 버젓이 지켜보는 현재의 삶.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나는 더이상 외롭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존재들과 나와 미래의 존재들이 시간과 공간의 켜를 사이에 두고 어깨를 맞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옛 건물을 보면,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과거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혹은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더라도, 그늘진 틈, 얼룩진 틈, 틈 사이에서 살짝 외로움을 느낍니다. 저는, 여행이란 쓸쓸함과 외로움을 발견하고 더 촘촘하게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옛 건물을 돌아보는 여행을 할 때마다 그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므로 혼자 옛 길을 걷고, 옛 건물을 보는 일은, 여행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틈을 보고 오소소,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고,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상상해보는 그런 시간. 



그런 순간입니다. 













이윽고, 근대문학관에 도착했습니다. 두 채의 창고 건물은 외형을 남기고, 옆에 건물을 덧새워서, 공간을 연결했군요. 점차 붉게 변하는 내후성 철판으로 마감했습니다. 아마도 벽돌건물과 색상과 형태, 규모를 거의 유사하게 한 것 같죠. 내후성 철판은 벽돌과도 잘어울리고 콘크리트와도 조화롭지요. 붉은 갈색은 참 독특한 색이죠. 무겁고 진중하면서도 성깔있고 지속적이며 아주 유혹적이면서도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질 것 같은 그런 색. 저는 붉은 벽돌을 좋아합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 봅니다. 그동안 건물이 어떤 식의 변화를 거쳐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는지 간단한 이미지로 소개하고 있군요. 







건물은 아트플랫폼 전시관과 유사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중앙은 층고를 시원하게 개방하고  벽쪽을 따라서는 2층의 갤러리를 두어 전시를 두 가지로 쪼갤 수 있었지요. 건물의 뒷부분에는 사진처럼 공간을 덧붙여서 필요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1층에는 근대문학과 관련한 간단한 이슈들을 소개하고 소장하고 있는 원본 저작들을 전시하고. 2층에는 인천과 관련된 문학을 따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근대문학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는 있지만, 우리 문학을 총망라하는 그런 장소는 아닙니다. 인천 개항장 풍경에 관심이 있어 인천에 들른 사람들이라면 편안하고 즐겁게 둘러볼만한 정도였어요.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문학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전시물만 열심히 읽고 따라다니지 말고 공간 속을 거닐면 꽤 기분이 좋아집니다. 1930년대의 다방 모습을 재현한 벽화도 있고(한켠에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도 있고 모던 걸들이 커피와 홍차를 즐기는 한편, 신문기자로 보이는 안경쓴 청년이 집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요.) 염상섭의 만세전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슬라이드로 구성하여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물도 꽤 흐뭇합니다. 나는 2층, 추리소설 부분에서 마치 조그마한 연극무대처럼 만들어놓은 전시물을 한참 보았습니다. 소소한 아이디어로 재미있게 꾸며놓은 것들이 많아서 작지만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옛 책들이었습니다. 


1930~40년대 책인데도 참으로 깨끗하게 보관된 책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1947년에 나온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바람과 별과 시>가 전시대 안에 있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찍은 제목을 보면서, 그 책을 쓰다듬어보고, 그책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 종이를 만져보고 그 활자를 조용히 눌러보고 싶었습니다. 그 기분을 이해한 것인지, 옛 책을 복사 제본하여 만져보고 읽어볼 수 있도는 카피본을 몇 권 만들어두었더군요. 


저 작고 앙증맞은 책들을 손에 쥐어보며, 오래된 책이 가진 그 느낌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아, 그 시절에는 이렇게 작은 책을, 이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았겠지요. 북간도에 살던 소년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 <사슴>이 나왔을 때, 한정본으로 출간한 그 시집을 갖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꼼꼼하게 필사해서 간직했다고 하지요. 


나도 너무 소중했던 소설, 문장, 이야기들을 노트에 옮겨적고 읊고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좋다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문학의 한조각을 씹고 삼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그때, 문학이 전해준 소중한 느낌들을 되새기며 또 그런 사랑스런 기분에 젖어들려고 합니다. 



옛날 책들은 활자를 하나하나 찍어눌러서 인쇄를 했지요. 그래서, 책에는 움푹 눌러찍은 흔적도 있고, 종이도 지금보다 가슬가슬하고, 조판도 손으로 하여 글자가 비뚤거리기도 하고 그렇죠. 그 작은 활자가 보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인쇄한 책들을 보면, 책은 정보를 담는 작은 상자가 아니라, 온기가 담긴 좋은 물건 같습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물건 말입니다. 


지금의 책은 좀 많이 크고, 아낌없이 종이를 쓰고, 아낌없이 수많은 작가들의 글을 읽고 그 향기를 즐기면서도 한 권 한 권의 소중함을 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향유할 수 있는 글, 이야기의 그림자를 좀 더 소중하게 대하기로 했습니다. 푹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감사하다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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