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진 여행을 계속했다. 이.타.카.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했지만 영웅의 모험담이 그러하듯, 신비롭고 고통스러우며, 아름답고, 심란한 일들로 가득했다. 고향에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이타카에 도착한 오딧세우스는 어찌되었던가. 홀몸으로 지내는 동안 호시탐탐 아내를 넘보던 사내들을 죽이고 자신의 자리를 되찾은 그는, 어떻게 다음 인생을 살았던가. 모험에서 돌아온 영웅은 노쇠한 늙은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영웅은 여행지로 떠나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그 여정 속에 있어야 영웅으로 인정된다. 목표 지점에 이른 자에게는 그 후 찾아오는 권태로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가 더 큰 난제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지점이기도 하다. 









조각가 권진규의 아틀리에를 찾으면 '귀향'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영웅이므로, 그의 아틀리에를 귀향한 영웅의 이타카,라 불러도 될 것이다. 권진규는 1948년 일본에서 공부하던 형이 폐렴으로 몸져 눕자 형을 찾아 밀항했고 다음해 형이 죽은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몇 해전부터 일본에서 조각을 배울 거라고 말한 대로 무사시노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조각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배우고 또 배우는 시기,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또 만들던 시기. 그때 권진규는 모험을 떠난 영웅 같았다. 빈속에 커피 한잔과 클래식 음악으로 끼니를 대신하더라도 기꺼이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하였기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모험의 여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에게 응당 있어야 할 조력자들이 그에게도 있었다. 사랑하던 여인 도모, 그리고 학교 이사장인 다나카 세이지. 도모는 닥치는 대로 일하며 그가 조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졸업하고서도 번듯한 작업실을 갖지 못해 학교를 드나들며 작품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학교 이사장이었던 다나카 세이지가 작품을 구입하여 돈을 보태주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했다. 번데기에서 탈피하여 나비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1958년에 귀국을 결심한다. 부친이 작고한 후 홀로된 모친이 건강이 나빠지자 아들을 불렀다.형을 대신하여 가족의 부양을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있는 10년 동안 그의 곁에 있었던 아내 도모를 그대로 두고 그는 이타카로 돌아왔다. 귀향한 영웅을 기다리는 것은 암흑같은 고단한 현실이었다. 그의 이타카는 깊은 동굴같았고, 오딧세우스처럼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 아들도 없었다. 가장의 의무와 예술가의 자유 사이의 균열. 돌아온 자가 보듬어야 할 운명이었다. 돌아온 자는 떠나지 않은 자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세상을 보아버린 사람은, 그 강을 건넜던 사람은 다시는 그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 모르는 채로, 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갈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정서적, 정신적 균열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서 그는 동굴같은 아틀리에에서 밤이면 밤마다 천년 전 세상을 향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태고적 무한의 힘이 난무하는 세계, 영적인 세계, 내면의 세계, 죽음의 세계, 우주라는 빛의 세계로.  그는 과거 황금의 제국을 노니는 거센 목덜미의 야생마였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두 아이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로마를 세울 그 시절, 건국의 영웅을 키운, 거대한 유방을 가진 늑대이기도 했고,  두눈이 튀어나올 듯 신체의 압력을 발산하는 고양이였다가, 팽팽한 근육과 힘줄에 가벼운 살갗이 뒤흔들릴 정도로 크고 강력한 신체를 가진 고대의 영웅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요하게 속세를 바라보는 불상이 되기도 하고,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오묘한 얼굴이기도 했다.  


 


















조각가 권진규의 아틀리에를 오랜만에 찾았다. 5월 4일, 조각가의 기일을 맞아 아틀리에를 개방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까닭이다. 못보던 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정릉 여동생의 집에 설치되어 있던 것인데, 원작은 삼성미술관에서 보유하고 있고 복제품이 이 집을 장식하고 있다. 올해는 조각가의 여동생인 권경숙 여사가 내셔널트러스트에 아틀리에를 기증 절차를 시작한지가 10년된 해라고 한다. 그 동안, 살림집이었던 한옥은 구가건축의 조정구 건축가가 보수하여 현대 예술가의 레지던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아틀리에는 온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방문객을 맞이해왔다



그가 귀국한 후 가족과 거처를 꾸렸던 집이다. 층고가 높은 아틀리에를 권진규는 직접 지었다. 바깥에 큰 조각을 구워내는 가마도 만들었다. 실내에도 샘플 작업이나 난방을 위한 작은 가마와 우물도 있었다. 흙을 빚고 구워낼 때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던 이곳에서 1973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흔적을 가족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마는 작품으로 먼저 권진규를 접했던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의 숨결이 깃든 이 장소가 마냥 소중하게 느껴진다. 살아있을 당시에는 높이 평가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들은, 보편적인 감정을 진중하게 다루고 있는 단독의 물질로서 유수의 미술관 컬렉션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의 이타카는 어떤 모습인가. 그의 균열된 삶이 봉합되었던 이 어두운 공간에 들어선다


극도의 불안과 극도의 떨림, 극도의 피로와 극도의 집중. 

고요하기만 한 공간에서 나는 온갖 소음을 듣는다. 불과 물의, 물질의 거친 만남을. 

     오롯한 예술로서만 그 장소를 만난다. 


조금 오랫동안 그 집에 머물렀다. 책을 보고 작품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예전에는 적요로운 표정의 인물상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지금은 온갖 세포가 바짝 압축되고 온갖 내적 기운이 껍질을 뚫고 나올 정도로 팽팽한 동물상에 시선이 갔다. 조각가의 메마른 육체와 조금 대비된다는 생각을 했다가 얼른 그 생각을 지웠다. 조각가가 몰두한 내적 에너지는 그의 육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 그의 죽음과도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의 조각은, 여전히 격앙된 몸짓 그대로, 영원히 팽팽한 긴장 그대로 생명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준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마치 죽기 직전이라는 듯 최고조로 끓어올린 힘들은 무엇인가. 


















여전히 바다속에 매몰된 생명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위해서도 묵념했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서도 묵념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예술에 대해서도 묵념을 올렸고, 찬연히 빛나던 햇빛이 검은 구름에 금세 사라지는 세상을 향해서도 묵념했다. 세상에 대해 어찌할 바 모르고 몸둘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하던 내가 그곳에서 말없이 앉아있으며 많은 감정과 만났고 많은 감정을 덜어냈다. 오늘의 추모는, 불운하고 완벽했던 예술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불운 앞에서 어찌할바 모르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당신을 위한 것이었고, 나를 위한 것이다. 


 

 






















돈암동은 십년도 더 오래전에 신혼을 살던 곳이다. 오랜만에 그 동네를 거닐면서 나는 동네의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깨달았다. 일년도 채 살지 않았던 그 동네에서 걷고 먹고 마시고 사고 웃고 말하고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처럼 일요일마다 동네 목욕탕을 갔고, 성신여대 앞 만화가게에 갔고 미고 케이크를 먹고 태극당을 갔고 지하철을 탔고 비디오를 빌려보았고 성당에 갔다. 햇살이 따뜻하던 날도 있었고 빗줄기에 몸을 흠뻑 적신날도 있었고 발이 꽁꽁 얼어붙은 날도 있었다. 체형보정속옷을 사고 유행하던 리바이스 진을 사입던 가게들도 생각났다. 그 기억들로 동선동과 돈암동을 돌아다니는 내내 극도로 행복해졌다. 그떄와 사뭇 달라진 건물들이 즐비해도 괜찮았다. 그때 나는 서울이 조금 더 좋아졌다. 


길을 거닐다가 박완서 선생이 여러 차례 글 속에 표현한 돈암동 안감내에 이르렀다. 신안탕, 신아탕이라 불리던 목욕탕이 있던 골목이었다.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목욕탕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물로 빨래를 했다는 그 천은 공원처럼 정비되어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아르데코풍 외관을 한 목욕탕이 있던 자리는 이제 버스 주차장으로 바뀌어있었다. 박완서 선생이 아셨다면 서운해하셨을까? 다만 신안탕의 이름을 딴 여관이 남아있다. 그 앞을 지나는데 천사의 날개가 벽에 그려져있는 것이 보였다. 천사의 날개.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땅에 대한 어떤 은유인 것 같다. 


한줌의 위로같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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