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엄마없는 하늘 아래>라는 영화 속에서였습니다. 내 나이 대여섯살 쯤 되었을까? 아마도 영화 속 주인공 아이와 비슷한 또래였겠죠. 영화 보며 눈물콧물 흘리던 순간조차도 지는 햇살을 등지고 물레방아를 돌리며 물을 끌어올리던 영화 속 아빠의 뒷모습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염전은 끝없는 노동의 현장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처럼 여겨지기도 했었죠.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데다, 그 유명한 프랑스 게랑드 꽃소금에 버금가는 천일염이 생산되는 몇 안되는 지역으로 우리 천일염전이 부각되면서 매스컴도 많이 탔습니다. 그런가하면 작년에는 소금창고의 슬레이트 지붕에서 석면이 나왔다며 소금 먹기를 거부하지 않나, 올해엔 일본 지진과 원전 소동으로 너도나도 소금을 가마니로 사들여서 소금 파동도 일어났었지요. 한해 한해 소금에 대한 사건사고가 생겨나니 천일염 하시는 분들의 마음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닐 듯합니다.
시어머님은 소금을 서너푸대 미리 사놓으셨다가 3년 정도 묵히며 간수를 뺀 후 투명하고 하얗게 정돈된 소금을 사용하십니다. 늘 신안증도의 천일염이죠. 신안증도의 천일염전, 거대한 소금밭인 태평염전에 다녀왔습니다.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공무원 워크숍이 문화재 활용에 대한 재고라는 주제로, 태평염전과 소금 박물관이 있는 신안증도에서 열렸습니다. 저와 남편은 그 행사에 초청되어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강의를 하러 갔었습니다. 신안증도는 우리나라에 7개밖에 없다는 슬로우 시티 중 하나이기에 더욱 유명해진 곳이죠. 고요한 시간을 누리려는 관광객들도 많은 곳이고요.
그곳에는 시간이 참으로 천천히 가는 것 같았습니다. 자동차 엔진소리가 죄송스러울 정도로 조용했지요. 자글자글 햇살이 녹아드는 언덕과 들판에서는 양파 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 슬로우~슬로우~ 해야되는데 서울까지 돌아갈 길이 바쁘더군요. 동남아 해안이 부럽지 않다는 우전해안은 들여다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평염전과 소금박물관은 꼼꼼히 보고 왔습니다.
구글어스에서 찾아본 태평염전. 격자로 짜여진 넓은 판처럼 생겼다.
문화재청 소개자료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염전 참 넓군요.
태평염전은 우리나라 최대의 염전입니다. 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간척한 땅을 염전으로 만든 것인데, 해마다 15,000톤의 천일염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국내 생산량의 5%에 해당되는 양이라네요.
우리나라의 전통 제염 방식으로는 바닷물을 끓여 소량의 소금을 얻는 전오법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소금을 얻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소금은 귀한 산물로 여겨져왔지요. 우리가 보통 염전에서 보게 되는 천일제염법은 순수한 햇빛과 바람으로 해수를 증발시킨 후 농축하여 소금 결정을 얻어내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는 을사조약 이후 1907년부터 일본인에 의해 시작된 방법입니다.
초창기에는 경기도 주안 일대를 소금밭을 만들어 천일제염법으로 소금을 생산했고 이후 소래, 군자, 광양만, 연백 등 서해안 일대에 7천정보(1정보는 1천평)의 염전을 나라에서 독점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소래포구에 가시면 지금도 염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죠. 광복 후에는 민간업자들도 염전을 운영하게 되었으며 염전의 규모도 훌쩍 늘어나게 됩니다. 1960년대에는 공급과잉으로 염전의 규모가 축소되었고 1990년대만 해도 가격경쟁력이 좋지 않아 천일염전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천일염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소금은 암염이 60%이며 천일염, 정제염으로 구분되는데, 호주, 멕시코, 이탈리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천일염은 석회질 토양에서 오랫동안 건조하여 생성된 소금이라고 합니다. 이런 소금은 염도도 높고 암염과 다를바없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천일염은 갯벌에서 매일매일 채취하기 때문에 염도는 80~85% 정도이며 짠맛과 단맛 등 미네랄의 맛이 골고루 섞여있습니다. 유명한(그리고 비싼)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 미네랄이 함량이 높다는 거죠.
또한 고급 소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천일염 중에서도 토판염의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토판염은 갯벌 위에 흙을 고르고 다져서 그 위에서 천일염을 만드는 것이랍니다. 해마다 흙을 갈고 고르는 수고로움이 이루말할 수가 없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토판염을 생산하는 는 염전에서는 소금 장인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2~3년 동안 간수를 빼고 숙성한 토판염 소금은 가격도 꽤 되더군요.
태평염전은 1953년 피난민들의 정착하고 생활하도록 돕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피난민들의 생활은 하루하루 힘겨웠겠지만 현실에 적응하는 것으로 삶을 이어갔을 겁니다. 전쟁의 공포,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된 것으로 안도하며 살아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소금밭은 67개로 구성되고 각각 소금창고가 딸려있습니다. 3킬로미터에 달하는 염전에 쭉 늘어선 나무 창고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을 이룹니다. 새벽이나 이른 아침 염전 부근의 물가를 거닐면 촉촉한 물안개가 피어오를 것 같습니다. 한낮의 햇살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보였지만 새벽이나 저녁시간에는 그윽하고 한가로운 염전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그때 사람들도 수고로운 땀의 현장의 틈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는 않았을까요?
붉은 빛을 띠는 염생식물들도 이곳의 풍경을 색다르게 연출하는 존재들입니다. 염생식물이란 염도가 있는 땅에서도 잘자라는 식물들이죠. 계절에 따라 일곱가지 빛깔을 낸다는 칠면초, 붉은 줄기에 붉은 꽃이 달린 해홍나물, 국화꽃같은 갯개미취 등이 옹졸옹졸 솟아있습니다.
소금창고를 자세히 볼까요? 서해안의 염전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소금창고는 희한하게도 벽이 반듯하게 세워지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부에 보관하는 소금 때문입니다. 소금을 가마니에 넣어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소금 결정 그 자체로 쌓아두는데, 그렇게 때문에 소금의 무게가 벽체를 밀어내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 힘을 견디기 위해 벽을 비스듬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목재가 검게 보이는 것은 방수처리용 콜타르를 칠했기 때문이지요. 내부는 목재 그대로의 색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소금이 수십년을 닿아도 썩지 않는다고 하지요.
목재창고 내부는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자료에 따르면 바닥의 경우 갯벌흙을 그대로 쓰거나 송판을 깔기도 합니다. 갯벌흙은 소금의 간수가 스며들어 마치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진다고 해요. 참 신기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갯벌위에 흙을 고르고 다진 후에 소금을 만드는 토판염도 가능한가 봅니다.
석조로 지어진 유일한 소금 창고. 돌 조각을 그냥 쌓지 않고 율동감있는 패턴을 형성한 게 재밌죠. 벽체를 지지하는 또다른 돌 기둥. 마치 고딕석조 성당을 지지하던 플라잉 버트러스의 기능이 아닐까? 도마뱀 무늬가 나름 귀엽네요.
깔끔한 문화재 안내판. 요즘 안내판은 이렇게 디자인이 모두 바뀌었죠?
소금 박물관 천장의 트러스 구조. 닥트와 전등 선들로 인해 잘 보이지 않지만요.
소금박물관은 원래 소금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것입니다. 보통의 소금창고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목조로 지어졌는데, 이 건물은 독특하게도 석조로 세워졌어요. 인근 지역의 산을 발파해서 거기서 나온 큼직한 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른 건물 벽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염전이 조성되던 1953년에 인부들이 직접 만든 소금창고인데요. 소금밭에서 레일을 깔아 채취한 소금을 이곳까지 운반하여 보관했습니다. 북한지역은 어떤 지 알 수 없지만 남한 지역에는 유일하게 석조로 만들어진 소금창고라는 점도 특징이지요.
소금 창고의 규모는 991.74m2이며 보통의 목조 소금창고보다는 훨씬 큰 규모입니다. 역시 소금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벽을 돌로 괴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석조창고는 1980년대부터 목조창고가 세워진 후 쓸모가 없어졌지요. 원래 두 채가 나란히 있었는데, 한 채를 허물로 한 채는 소금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꿔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내부 모습입니다. 우측편에는 바닥 아래에 태평염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형이 있습니다. 어두워서 잘 안보였습니다.
소금박물관의 내부 모습입니다. 정보가 잘 정리된 전시시설이 아니라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태평염전을 보여주는 전시물도 있고 소금을 활용한 예술작품도 있고 소금을 사용한 역사적 사례도 있긴 한데, 구성이 복작복작해서 대체 뭘 봐야할 지 알 수 없더군요. 건물이 가진 멋진 부분들을 잘 보여주고, 다소 고전적이더라도 간단하게 자료들을 정리해두는 게 더 좋지 않나 합니다. 요즘 멀티미디어 전시 혹은 체험 전시를 너무 강조해서 어느 문화재를 구경하더라도 초등학생을 위한 시설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됩니다. 한번 가보면 더 가볼 필요없는 전시장이 아니라, 늘 음미하고 다시 되새겨볼 수 있는 "자료실"로서 이런 공간이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날도 더운데, 앉아서 쉴 휴게 시설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었군요.
소금박물관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입니다. 등록문화재에는 반드시 이 동판이 붙어있습니다. 동판의 형태는 동그랗기도 하고 네모진 것도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은 '등록문화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많습니다. 문화재 건물을 들여다볼 때 이런 문장이 붙어있는 지 한번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죠?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1931번지 외
등록문화재 제 360호(2007년 지정)
소금박물관
등록문화재 제 3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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